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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교육부 사태’ 흔든 박찬대 의원을 만나다

기사승인 2022.10.02  23:4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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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사당 늦은 오후 4시. 한 국회의원이 ‘백팩’을 메고 헐레벌떡 의원회관 사무실로 들어왔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에 당선된 박찬대(경영학과 84학번) 국회의원이다. 아침 6시부터 KTX를 타고 당 최고위원회, 예산정책협의회가 열리는 부산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이후에도 국회 본회의 참석 등 일정이 빼곡했지만, 모교에서 인터뷰하러 온 본지 기자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건넸다. 짧은 시간임에도 그의 이야기에선 정치 인생과 인하대에 대한 진심을 들을 수 있었다.

 

인하대와 이어진 각별한 인연

“인하대는 제 삶과 떼어놓을 수 없죠.” 박찬대 의원은 인하대 안에서 태어난 ‘인하인’이다. 그가 태어났던 1967년 당시 학교 운동장 부지에는 ‘히타치’란 일본기업의 노동자들이 모여 살던 마을이 있었다. 박 의원은 그곳에서 태어나 학창 시절 내내 용현동에서 살았다. 용현초, 대건중, 동인천고를 졸업한 그는 인하대학교 경영학과에 진학한다.

어려운 형편 속 학창 시절을 보냈던 박 의원에게 인하대는 공부를 계속할 수 있게 해준 ‘은인’이다. 태어나고 자란 공간이면서도 학비에 대한 부담 없이 학업에 매진할 수 있도록 도움받았기 때문이다. 정석장학생이었던 그는 전액 장학금과 생활비를 지원받으면서 대학 생활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박 의원은 자신이 어려울 때 받은 도움을 후배들에게 환원해 왔다. 20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장학금 1억을 고등학교, 대학교 후배들을 위해 기부했다. 그러면서 그는 음수사원(飮水思源)을 말했다. 물을 마실 때 그 근원을 생각하라는 사자성어로, 자신이 몸담았던 곳에 대해 생각하라는 의미다. “자기의 뿌리와 함께했던 인연들을 생각하는 게 필요해요. 이런 것들이 배타적으로 발생하면 문제가 되겠지만, 자부심과 경쟁력의 근원이 된다고 하면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최태성 경영학과 명예교수와의 인연도 언급했다. 대학교 2학년 때 지도교수로 만난 최 명예교수는 박 의원의 ‘은사’다. “지도교수님께서 나한테 미친 영향이 굉장히 커요. 졸업을 하고서도 그분한테 받은 사랑만큼 내 후배들에게 나눠줘야 되겠다 생각했죠.”

 

정치로 한걸음 한걸음

박찬대 의원은 인하대학교를 졸업하고 군 복무를 마친 뒤 서울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한다. 이후 한국과 미국에서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하고, 회계법인을 창업해 열심히 생활인으로 살아간다.

그러다가 2009년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계기로 정계에 입문한다. “노무현 대통령 이후 권력이 재창출되지 못하는 과정을 보며 민주와 진보, 그리고 한반도의 평화를 바라는 민주당이란 정치 세력이 실패했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즈음에 노무현 대통령이 갑자기 돌아가시게 되니까 굉장히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더라고요.” 생각이 많아진 박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의 장례식에 참석하게 된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사람들을 헤치고 들어가 영구차에 손을 얹게 되는데, 그때가 박 의원이 처음 노 전 대통령을 가깝게 만났던 순간이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고 말했던 노무현 대통령 말씀은 계속 마음속에 되뇌게 되더라고요.”

이를 계기로 박찬대 의원은 돈을 버는 생활인으로서 삶이 아닌 시민으로서 삶이 무엇일까 고민하게 된다. ‘한미회계법인’ 사무실이 있던 부평에서 시민운동가들과 함께 사회와 공동체의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미술과 음악을 좋아해 예술고등학교 진학을 꿈꿨던 어린 시절 때문일까. 박 의원은 문화예술인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특히 좋아했다. “문화예술인들이 지속 가능하게 자기 활동하기가 사실 굉장히 어려운데, 그들이 인천에서 고유한 문화예술 활동을 영위하는 것이 좋아 보였고 그들의 친구가 돼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들과 함께 문화와 예술을 이야기하고 인천 지역사회의 문제점들을 토론하는 삶에 행복감을 느끼며 ‘깨어있는 시민의 힘’을 경험한다.

“우리 사회 문제를 해소하고 청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정치가 가장 강력한 수단과 도구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정치에 희망을 걸게 됐죠.” 그렇게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인하대가 포함된 남구을에 공천을 신청하지만 아쉽게 공천을 받지 못했다. 4년이 지나 지역구를 연수구갑으로 옮겨 치른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단 ‘214표 차’로 상대 후보를 이기며 처음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된다.

나라 살림은 ‘알’차게 지역구 살림은 ‘꽉’차게. 국회의원이 된 그의 모토였다. 박찬대 의원의 이름을 빗대 ‘알찬대’와 ‘꽉찬대’ 같은 별명도 붙여졌다. 그는 정치가 생활과 분리돼 있지 않다는 사실에 집중했다. “정치가 우리 삶에 유익하고 쓸모가 있어야 해요.”

 

교육부 사태를 흔든 박찬대

그러던 어느 날 교육위원회 간사로서 의정 업무를 하던 박찬대 의원에게 날벼락 같은 뉴스가 들려왔다. ‘대학기본역량진단 인하대학교 탈락’

“인하대학교가 기본역량을 진단했는데 국가의 지원을 받을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는 대학이란 걸 누구도 인정할 수 없었기에 충격적이었죠.” 박 의원은 정말로 인하대가 떨어지는 게 적절한 평가인지에 대해 교육부가 재검토하고 내용을 신중하게 조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학생, 학교, 총동창회 등이 이의제기를 했으나 교육부는 이를 기각하고 탈락을 확정했다.

박 의원은 당시 교육부가 평가에 오류가 있을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단정 지었다고 지적했다. “어떤 사람이 정말 건강한데 병원에서 CT를 찍고 큰 병에 걸렸단 진단을 했다 칩시다. 너무 감당하기 어려우면 다시 CT를 찍든가 MRI로 바꿔서 찍어보고 확신이 들 때까지 하는 절차가 있는데, 교육부는 새로 찍는 게 아니라 옛날에 찍었던 CT 필름을 보고 다시 판독을 했던 거죠.”

박 의원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평가 과정상의 오류와 문제를 지적하고, 기존의 평가를 고수하는 교육부의 태도를 문책했다. 국감 당시 자료를 찾고 질의서를 작성하느라 그의 의원실 보좌진은 며칠간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박찬대 의원은 평가의 신뢰성이 담보되지 않고는 1조가 넘는 재정지원 관련 예산도 동의할 수 없다며, 교육부에 예산 압박도 이어갔다. 말 그대로 박찬대 의원 한 사람이 인하대를 위해 교육부에 ‘맹공’을 한 셈이다. “오류 가능성에 대해서 절대적으로 무시하는 관행을 반드시 깨고 싶었고,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부분을 입증하고 싶었습니다.”

박 의원에게 있어 교육부 사태는 후배들을 생각했을 때 더 마음 아픈 일이었다. “우리 학생들, 우리 후배들이 코로나 때문에 모여서 집회를 못 하니까 전부 과잠을 보내서 하나홀을 덮었던 사진을 보고 눈물이 많이 났어요.”

박 의원은 이것이 단순히 모교에 대한 지연과 학연의 문제는 아니라고 짚었다. “인천 지역사회 자체가 인재 배출과 함께 자립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인하대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합니다.”

이러한 박찬대 의원과 의원실의 노력은 작년 12월 교육부의 미선정 대학 대상 추가선정 발표를 이끌어냈다. 추가선정은 유례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올해 5월 마침내 인하대는 일반재정지원 대학에 추가선정 될 수 있었다.

 

능력을 인정받은 정치인

박찬대 의원은 지난달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에 당선됐다. 재선 국회의원으로서 점차 민주당 내에서 어느덧 책임 있는 위치에 올라선 그다.

박찬대 의원은 21대 국회에서 인천 지역 국회의원 중 가장 입법 성공률이 높은 의원으로 꼽힌 실력 있는 국회의원이다. 21대 국회에서 26건을 대표 발의하고, 16건을 통과시켜 62%의 입법 성공률을 기록했다. 여기에는 법안을 내고, 그것을 끝까지 마무리하고자 했던 강력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법안에 좀 집중하는 편이에요. 제가 낸 법안은 반드시 통과해야 되겠다는 몰입과 집중력이 좀 있었던 것 같아요.”

특히 ‘대안교육기관에 관한 법률’과 ‘한국장학재단법’ 개정은 그의 대표적인 법안이다. 기존 제도권 교육이 포용하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있는 학생들을 지원하기 위해, 대안학교의 설립과 운영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고 한국장학재단이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한 지원을 할 수 있게 했다.

“최고위원이 돼서 업무도 많아지고 더 바빠지기는 했지만, 우리가 법안을 만들고 이 법안을 통과시키고 그 법안이 국민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끔 하는 것이 국회의원의 가장 중요한 입법부 일원으로서 역할이라 생각해요. 거기에 더 집중할 생각입니다.” 최고위원 당선과 함께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로 상임위원회를 옮긴 박 의원은 앞으로의 의정활동을 기대해달라 전했다.

김종선 기자 jongseon05@inha.edu

<저작권자 © 인하프레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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