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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99번의 낙종을 견딘 특종기자를 만나다

기사승인 2022.05.29  21:5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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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정은주(경영학과 93학번) 콘텐츠 총괄(사진=정은주 제공)

몇 달 밤을 새워가며 자그마치 3TB(테라바이트)의 세월호 참사 기록물을 분석한 언론인이 있다. 현장을 가장 중시하는 ‘사회부 기자’이자 ‘늙지 않는 기자’가 되고 싶다는 한겨레신문 정은주(경영학과 93학번) 콘텐츠 총괄이다.

인하대학신문에서 기자의 삶을 시작한 그는 2002년 서울신문을 거쳐 2010년 마침내 꿈에 그리던 한겨레 기자가 됐다. 그 속에서 ‘한-EU FTA 번역 오류 연속보도’와 ‘세월호 사고 기록 분석’을 비롯한 수많은 특종을 냈다. 현재는 한겨레신문 콘텐츠 총괄로서 뉴스 콘텐츠 생산 및 디지털 유통부서를 책임지고 있는 그를 만나봤다.

 

한겨레21과의 인연, 현장을 담는 기사

“한겨레21 기자가 되기 위해서 기자가 됐어요.” 정은주 총괄과 한겨레21의 인연은 특별했다. 학보사 시절부터 구독한 한겨레21은 그의 캐나다 유학 시절 가장 큰 힘이 됐다. 언어의 장벽에 막혀 힘겨웠던 날들을 보낸 뒤 매주 금요일 밤, 전화선을 통해 한겨레21 PDF 파일을 밤새 다운로드했다. 한겨레21을 기다리는 설렘으로 조금이나마 타지 생활을 위로받을 수 있었다. “토요일 오전 시간, 너무나 알차게 읽었던 한겨레21은 제 외로운 유학 생활을 견디게 해준 유일한 리워드였죠.”

캐나다에서 무사히 저널리즘 스쿨 석사학위 과정을 마친 그는 한국에 돌아와 서울신문 기자가 됐다. 시작은 법조 사건을 담당하는 사회부였다. ‘태안 기름유출 사건’ 주민 피해보상과 관련한 추적보도를 통해 처음으로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했고, 그 뒤로도 묵묵히 언론인의 길을 걸었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9년 차 베테랑 기자가 되던 해 그는 비로소 한겨레의 문을 두드렸다. 이어 2012년에 꿈에 그리던 한겨레21로 부서를 이동했고, 2020년엔 편집장까지 역임했다.

“신문기자는 사람의 숨소리, 눈동자 떨림까지 사람들이 말하지 않은 아주 많은 말들을 담을 수 있거든요.” 정은주 총괄은 신문기자의 특성을 “Don’t tell, Just show”라고 설명했다. 현장을 보고 단순히 말(tell)하는 게 아니라, 보여주기(show) 위해 관찰하고 묘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현장 가서 사람을 많이 만나거나 공간을 마주하는 것은 주간지 기자가 유일한 것 같아요.”학창 시절 주간지의 심층적이고 촘촘한 기사들에 반했다는 정은주 총괄에게 한겨레21은 운명이었다. 자신의 전체 커리어를 ‘사회부 기자’로 정의하며 현장을 중요하게 생각한 그는 세월호 진상규명 프로젝트도 주간지였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한다.

 

잊을 수 없는 세월호 취재

정은주 총괄의 가치관은 세월호 사고 탐사보도에서 가장 잘 드러났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세월호를 가장 많이 취재했던 기자 중 한 명이다. 무려 2년 동안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한 추적을 했고, 그 과정에서 3TB의 자료를 분석했다. “우리 언론이 너무 한 이슈를 짧게 다루고 떠나요. 거기에 머물러 있는 피해자들이나 유가족은 다들 그대로 있는데, 기자들은 계속 바뀌고 이슈가 있을 때만 잠깐 오고 하니까 그분들 입장에서는 믿을 수가 없는 거죠.”

세월호와의 깊은 인연은 유가족과 떠난 38일간의 동행에서 시작됐다. 2014년 7월 자녀를 잃은 두 아버지가 단원고에서 진도 팽목항으로 순례길을 떠났다. 이들은 진상규명을 위해 안산-팽목-대전 간 총 900km의 거리를 걸었고, 이후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세례를 받으며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정은주 총괄은 1박 2일 독립 취재를 갔다가 이들과의 동행을 결심했다. “너무 준비 없이 떠나셔서 길을 제대로 찾지도 못하는 상황이었고, 안타까운 마음에 동행했어요.”

이랬던 그도 세월호 취재를 한때 그만두려던 적이 있었다. 현장을 계속해서 본다는 것이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버팀목이 돼 준 것은 남편이었다. 남편의 조언에 힘입어 세월호 진실규명에 더 다가가기 위한 적임자가 본인임을 알았고, 다시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2015년 3월부터 5월까지는 홀로 기록을 분석하며 단독기사를 수차례 보도했다. 세월호 사고 당시 초동대응에 실패한 해양경찰 수뇌부의 여론조작과 은폐를 알렸고, 관련 재판의 1심과 2심을 바꾸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후 단체 ‘진실의 힘’과 협력해 2016년 3월까지 ‘세월호 그날의 기록’이란 책을 썼다. 15만 장 가까운 기록과 자료를 추적하고 분석한 끝에 맺을 수 있었던 값진 결실이었다.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너무 힘들었어요. 자료도 많고, 진실을 엮고 쓴다는 게 두렵기도 하더라고요.” 이 취재로 정은주 총괄은 한국 기자상과 민주언론상을 받았다.

“세월호의 진실이 아무것도 밝혀진 것이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나름대로 진실이 밝혀진 것들도 있고, 여전히 논쟁적인 부분도 있습니다. 그래서 너무 쉽게 답을 정리하려고 안 했으면 좋겠어요. ‘사실’과 ‘진실’은 그렇게 명료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오히려 뭔가를 분명하고 확신 있게 말하는 사람들은 사기꾼으로 생각해요. 왜냐면 우리가 잘 모르는 게 너무 많거든요. 세월호뿐만 아니라 모든 사건이 그렇죠.”

 

정은주 기자가 세월호 참사 탐사보도로 ‘제25회 민주언론상’ 본상을 수상했다.(사진=정은주 제공)

 

데스크로서 정은주 기자

숱한 취재 현장을 누비다 보니, 어느덧 20년 차 기자가 됐다. 몸과 마음이 예전 같지 않지만, 정은주 총괄은 지치거나 게으름 없는 ‘늙지 않는 기자’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후배들이 봤을 때 늙지 않고, 낡지 않은 기자로 보이도록 하는 게 제 숙제예요.”

한겨레21 편집장을 거쳐 한겨레신문 편집국의 두 번째 위치인 콘텐츠 총괄을 맡아 데스크 업무를 하고 있지만, 마음만은 일선 현장에 가 있다. “제가 관리자로 일한 지는 3년 정도 됐는데, 이건 제 기자 인생에서 보면 잠깐 있는 일입니다. 이르면 내년쯤엔 다시 현장 기자로 돌아가야죠.”

정 총괄은 기자를 ‘선수’, 데스크를 ‘러닝메이트’로 정의했다. 데스크로서 기자들이 빛나고,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고충도 있다. 한때는 현장을 사랑한 선수였고, 기자들을 볼 때마다 피어오르는 ‘선수이고 싶은 욕망’을 쉽사리 떨쳐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그는 자신이 러닝메이트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데스크가 가진 나름의 매력도 찾아가고 있다. 데스크로서 구현한 아이디어가 후배 기자들에 의해 훌륭하게 만들어지면, 마치 오케스트라 지휘자 된 것 같은 마력을 느낀다고 전했다. 그렇게 러닝메이트로서 끊임없이 제안하고 기자들을 지원하며 ‘쓰레기 TMI’, ‘나의 선거, 나의 공약’ 등 값진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99번의 낙종을 견딘 기자

“특종 기자는 99번의 낙종을 견딘 기자예요.” 밤을 지새우며 취재해도 내지 못하는 기사가 부지기수다. 그럴 때마다 ‘내가 더 할 수 있을까?’하는 불안함에 휩싸이곤 한다. 정은주 총괄은 누구보다 하고 싶어 한 일을 꿈꾸던 곳에서 하고 있지만 “기자로서의 삶은 대체로 불행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게 수많은 낙종 끝에 1번의 특종은 짜릿함 그 자체다. 정은주 총괄은 그럴 때 ‘내가 사회에서 쓸모 있는 사람인가’, ‘괜찮은 사람인가’하는 느낌이 든다고 한다. 그리고 그 길을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묵묵히 걸어왔다. 정은주 총괄은 후배 기자들에게 항상 묻는다. ‘being a reporter’인지 ‘doing it as a reporter’인지를. 그는 ‘기자’가 좋은 게 아니라 ‘기자 일’이 좋았다. 잘하는 것과 별개로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그 꿈을 향해 계속해서 나아갔다. 이제 정은주 총괄은 101번째 낙종을 견딜 준비를 하고 있다.

김종선 기자 jongseon05@inh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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