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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성매매의 늪에 빠진 사람들

기사승인 2024.06.02  21:5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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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미추홀구 숭의동에는 ‘옐로하우스’라는 집창촌이 있었습니다. 2020년을 끝으로 옐로하우스는 완전히 철거됐습니다. 주안동과 용현동 일대에는 ‘방석집’이 즐비했고 현재는 청년창업 특화 거리 사업으로 대부분 사라진 상태입니다. 사회는 이곳의 여성들에게 혐오의 시선을 투사하며 걸어왔습니다. 본지는 이들이 인천에서 살아왔던 ‘인간으로서의 삶’을 기록합니다. 사회가 던져온 시선을 돌아봅니다.

「성매매피해자보호법」 제2조에 따라, ‘윤락녀’ 등의 단어는 사용하지 않고 ‘성매매 피해자’로 대체합니다.

 

옐로하우스 뒷골목 거리 (출처: 아듀! 옐로하우스)

옐로하우스, 그곳에서 살아왔던 사람들

1962년, 박정희 정부는 국내 104개소에 ‘특정윤락지역’을 지정했다. 대부분 미군기지 인근이었다. 1961년 당시 교통부 기획조정관실의 공문에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용이하게 유치할 수 있는 관광객은 주한 유엔군”이며 “외국인 상대 접대부를 교육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이어 “우리나라에 보다 많은 외화를 떨어뜨리게 한다는(벌어들인다는) 견지에서”라 밝혔다. 정부 차원에서 ‘외화벌이’를 목적으로 성매매 산업을 부흥시키는 한편, 「관광산업 진흥법」을 통해 영업소에 지원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그로 인해 서울의 청량리588, 용산역 인근 등지에 집창촌이 생겨난 것처럼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에도 집창촌이 생겨났다. 50년대부터 60년대, 용현동·학익동 일대에 미군이 주둔했고 그 옆으로 ‘옐로하우스’가 들어선다. 인천항 근처에 자리 잡았던 환락 거리가 영업을 위해 미군기지 옆으로 옮긴 것이다. 옐로하우스라는 이름은 근처 미군기지에서 얻은 노란 페인트를 벽에 칠한 것에서 유래했다. 숭의동·용현동·학익동 등지의 미군기지가 사라진 뒤에도 이곳의 영업은 계속됐다. 1948년부터 이어진 성매매 업소에 대한 ‘묵인 관리’ 관례가 적용됐기 때문이다.

이곳의 성매매 피해자들은 외부와 철저히 ‘분리’된 곳에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본방’이라 불린 방에서 모든 숙식을 해결했다. 필요한 물건은 모두 포주가 사서 제공해 주는 식이었다. 심지어는 이불 하나, 베개 피 하나까지, 밖에서 어떤 가격으로 거래되는지도 알지 못한 채 포주가 부르는 돈이 곧 값이었다. 이들은 낮에 활동하지 못했다. 밖을 다니지 못하는 탓에 바깥 세상은 전혀 알지 못했다.

이정은 희희낙낙(성매매 피해자 상담소) 상담소장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줄 모르는 것이 이해되느냐”고 물었다. 그가 만난 그곳의 여성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한 지 10년, 15년, 20년 지난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이어 “그만큼 사회성이 떨어지는 사람이 많다. 사회에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또 “사회에서 성매매 피해 여성을 ‘명품을 밝히는 여자’나 ‘쉽게 돈을 벌려는 여자’로 묘사하고 또 그렇게 인식하는 경우가 대다수이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했다. “심지어 성매매 피해 여성들도 스스로 한 달에 1천만 원을 번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빚이 더 쌓이는 현실에 처한다”고 밝혔다.

성매매 알선 택시가 성구매 남성을 기다리는 모습 (출처: 아듀! 옐로우하우스)

성매매는 ‘자의’가 아니었다. 그들은 사채와 고리대금에 의해 강제로 그곳에 빠져들었다. 또 포주는 성 판매 대금의 절반을 가져갔고, 월세, 옷값, 방값 등의 명목으로 다시 돈을 요구했다. 일을 나가지 않으면 벌금을, 내지 않을 때는 이자를 매겨 압박했다. 3,650%의 고리대를 매긴 포주도 있었다. 이들은 결국 그렇게 벗어날 수 없었다.

옐로하우스 철거 논의는 2018년이 돼서 이뤄지기 시작했다. 당시 미추홀구는 ‘성매매 피해자 등의 자활지원 조례’를 제정했다. 성매매 피해자가 성매매 집결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조례로, 탈성매매 확약서와 자활계획서를 제출하면 1년간 최대 2,260만 원을 지원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시의회 통과와 동시에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반대 여론 측은 ‘성매매에 피해자가 어딨느냐’라거나 ‘자의로 한 불법에 지원이 웬 말이냐’고 주장했다.

한편 철거 과정에서 성매매 피해 여성들은 협상 테이블에 오르지 못했다. 보상의 대상자는 포주와 건물주였으며 길바닥에 나앉게 된 여성들은 돈을 받지 못했다.

2020년, 마지막 ‘옐로하우스’가 철거됐다.

 

기자가 직접 방석집을 방문해 취재하고 있다.

방석집,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옐로하우스 외에도 아직 남아있는 성매매 업소들이 있다. ‘방석집’이라 불리는 곳이다. 과거 용현동과 주안동 일대에는 방석집이 즐비했다. 현재 주안동 일대는 ‘청년창업 특화거리 사업’으로 대부분 철거된 상태다. 지난 2월까지 운영하던 업소 한 곳도 5월 들어 철거돼 현재는 2곳만 남았다. 용현동 일대의 방석집 6곳 중 문을 연 업소는 하나였다.

방석집은 그 이름에서 알아볼 수 있듯, 변종 유흥업소의 양태다. 청년창업 거리에서 불과 100m 남짓 되는 거리에도 방석집이 있다. 빨간색에 단순한 단어로 채워진 간판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간판의 구석에는 조그맣게 ‘일반음식점’이라 표기돼 있다. 가게에 가까이 다가가자, 사장이 나와 안내한다. 문밖에서 물어보려 하자 “밖에서 얘기하는 건 좀 그렇다”며 “일단 들어가서 얘기하자”고 말한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빨간 조명으로 가득하다. 사장은 가게 안에서도 조그마한 방 안으로 들어가자고 권유한다. 자리에 앉자, 나이를 물으며 경계적으로 대하기도 한다. 주민등록증까지 요구한다. 위조 여부까지 확인한 후에야 가격을 안내한다. 메뉴판은 나오지 않고 ‘1인당 15만 원’이라는 요금을 제시한다. 그저 간단히 “맥주 한두 병이 서비스로 나온다”는 말이 끝이다.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그 금액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었다.

80년대 초부터 생겨난 방석집 여성들의 실상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땡전 한 푼’ 없이 상담소에 찾아온 이들도 많았다. 속옷 한 장 살 돈이 없는 사람도 있었다. 이 소장은 ‘성 착취’가 구조화됐기 때문이라 진단한다. 그는 “방석집에서 받는 ‘15만 원’ 중에서 포주가 가져가는 돈을 제외하면 벌 수 있는 돈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또 “당장 급전이 필요한데 돈 빌릴 수 있는 곳이 없었던 이들이 빚을 지게 되면서 빠져들게 된다. 400만 원을 빌린다면 그 중 선이자로 수십만 원을 가져가고 1,000%의 이자를 붙여 갚게 만든다. 그런데 하루 2만 원 남짓밖에 벌지 못하는 이들이 어떻게 그렇게 큰돈을 감당할 수 있겠나. 결국 다시 사채로 빚을 갚는 악순환에 빠진다.”고 말했다.

성매매 피해 여성들은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성매매를 밝히고 벗어나느냐, 성매매를 밝히지 않고 살아가느냐. 그들은 「성매매처벌법」과 「성매매피해자보호법」이라는 모순적인 기로에 섰다. 입증은 여성들의 몫이었다. 「성매매피해자보호법」을 통한 보호와 자립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자신이 성매매한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다만 성매매는 특성상 성구매 남성의 증언이 필수적이다. 그 외에는 법적 효력을 가지는 물적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구매 남성을 찾아 증언을 확보하는 것에서부터 막히기 시작했다. 성구매 남성은 「성매매처벌법」에 의거한 처벌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타락한 여성’이라는 인식도 넘어야 할 장벽으로 다가왔다.

 

성매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

이 소장은 옐로하우스 철거 이후 인천 전 지역의 현장을 돌며 조사하고 있다. 그는 “내가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절대 공감할 수 없다. 성매매는 특히 ‘안 하면 됐잖아’라는 인식이 가장 크다. 그러나 그들의 일생을 들여다보면 성매매를 하게 된 계기는 굉장히 기구하다. ‘이것을 자발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성관계를 좋아해서, 명품을 좋아해서, 돈을 좋아해서 하는 여성은 없다. 주변 자원이 부족해서, 당장 먹고 잘 곳이 없어서, 돈을 빌릴 여력이 없어서 내몰리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피해를 당해도 그것이 성매매라서, 어디 가서 말도 못 한다”고 말했다. 성매매 피해자들은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취업 사기의 형태도 빈번하게 발생해, 피해자인지 아닌지 판가름이 어려워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정작 피해자는 말하기를 꺼리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2023년, 미추홀구의 성매매 피해자는 262명이다.

이재훈 기자 ljh1109@inha.edu

<저작권자 © 인하프레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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