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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를 즐기다_책] 잔망스러운 사랑

기사승인 2024.06.02  21:4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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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랏빛으로 사위가 물들었다. 이를 기점으로 소년과 소녀의 세계가 변한다. 순수한 사랑의 이야기로 사람들의 마음에 아로새겨진 작품 「소나기」다.

소년은 소녀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부끄러워 제대로 다가가지 못한다. 그러던 중 소녀가 “이 바보”라는 말과 함께 하얀 조약돌을 던진다. 소년은 조약돌을 집어 주머니에 넣는다. 시간이 지나며 소년과 소녀는 서서히 친해진다. 들판을 걷고 개울가를 넘어, 꽃과 송아지를 이야기한다. 그러던 중, ‘삽시간에 주위가 보랏빛으로 변했다.’

짧은 소설이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힘이 있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대부분의 사람 모두가 갈구하며, 소녀의 죽음이라는 결말이 비극적이기에 더욱 뇌리 깊숙이 새겨진다. 「소나기」를 미적 심상이 뛰어난 작품으로 만들어준 데에는 ‘주고받음’의 미(美)와 소나기를 통한 ‘정화’가 핵심적인 요소일 것이다.

둘의 관계는 비언어적인 교류로 시작한다. 소녀는 개울둑에 앉아 있고 소년은 그런 소녀를 바라보는 상황에서, 서로의 ‘시선’을 의식한다. 다음은 ‘흉내내기’다. 소년은 소녀가 개울물에서 했던 몸짓을 따라 한다. 이후 주고받음의 관계는 더욱 나아간다. 서로 말문을 트게 되는 언어적 교류의 단계에 이른다. 소나기가 내리고 신체적 접촉이 일어나며, 주고받기는 점점 더 격렬해지기 시작한다. 마지막에는 정서를 공유하고 교환하는 단계에 이른다. 처음부터 끝까지, 소년과 소녀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주고받으며 마음은 점차 붕 뜨고, 세차게 일렁인다.

주고받음의 의미는 소나기를 통해 극대화한다. 소나기가 내리기 전까지 소년과 소녀의 세계는 엄격하게 구분 지어졌다. 소년은 시골에서 살고 가난한 소작인의 자식이며, 무명저고리를 입고 검은 피부를 지녔다. 소녀는 도시에서 살고, 부유한 지주의 자식이며, 분홍스웨터를 입고 하얀 피부를 지녔다. 소년과 소녀를 가르는 이항대립적 요소를 ‘소나기’가 분쇄한다.

소년과 소녀의 성분은 성별, 계층, 출신, 빈부, 교육 수준 등 모든 면에서 대립한다. 기존의 사회 혹은 어른들이 부여한 사회적 규범들이다. 소나기는 이런 위계적 구분을 삭제하는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 ‘정화’한다. 이상향적인 들판에서 소년과 소녀는 사람과 사람으로 만났다. 그 시공간에서 기존 사회의 논리를 벗어나, 서로의 마음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지게 한 것이 바로 소나기다.

소나기가 내려 소년과 소녀는 원두막으로 몸을 피했고, 소년은 젖은 무명저고리를 소녀에게 걸쳐준다. 무명저고리에 있던 진흙이 분홍 스웨터로 스며든 순간, 둘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진정한 ‘만남’의 순간이다.

부끄러움을 넘어서 서로에게 다가가는 것. 주고받으며, 한 계기를 통해 진실한 마음을 확인하는 일. 시대를 넘어서, 지금의 우리에게도 아름다움을 일깨워주는 이야기다.

박재형 편집국장 qkrwogud0@inha.edu

<저작권자 © 인하프레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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