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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선] 지구

기사승인 2024.06.02  21:3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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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달 호텔에서 지구를 보면 우편엽서 한 장 같다. 나뭇잎 한 장 같다. 훅 불면 날아가버릴 것 같은, 연약하기 짝이 없는 저 별이 아직은 은하계의 오아시스인 모양이다. 우주의 샘물인 모양이다. 지구 여관에 깃들여 잠을 청하는 사람들이 만원이다. 방이 없어 떠나는 새 · 나무 · 파도 · 두꺼비 · 호랑이 · 표범 · 돌고래 · 청개구리 · 콩새 · 사탕단풍나무 · 바람꽃 · 무지개 · 우렁이 · 가재 · 반딧불이 · · · · · · 많기도 하다. 달 호텔 테라스에서 턱을 괴고 쳐다본 지구는 쓸 수 있는 말만 적을 수 있는 옆서 한 잎 같다.

 

출처 : 박용하(저자), 「지구」, 「영혼의 북쪽」, 1999년, 『문학과 지성사』

 

지구란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지구는 생명체가 존재하는 유일한 천체이다. 우주에서 생명이 사는 행성은 지구 외에 발견하지 못했다. 이 행성엔 숲과 바다가 있으며, 낮과 밤이 있고, 무수히 많은 생명체가 함께 살아간다.

지구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들에게 이곳은 마치 여관과 같다. 우리는 이 아름다운 공간을 잠시 빌려 각자의 삶을 살아간 뒤 고스란히 다른 이들에게 내주는 것이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공간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방을 빌리고자 하는 자가 많아질수록 다른 누군가는 자신들의 공간을 잃은 채 점차 사라져간다.

반딧불이가 그러하며, 호랑이가 그렇다. 그뿐만 아니라 수많은 생명체가 자신들이 살아갈 자리를 잃고 있다. 인간이 그들의 터전을 빼앗고 있다. 숲을 도려내고, 먼지를 뿜어대며, 공장 하나 더 짓는 일에 사력을 다한다. 그렇게 그들은 조금씩, 지구에서 잊혀진다.

25년. 이 시가 쓰인 지 25년이 지났다. 그동안 지구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인간은 여전히 여관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하지만 한 가지 명심해야 하는 건, 우리는 여관에 머무는 손님일 뿐이라는 것이다.

송재혁 기자 12203566@inha.edu

<저작권자 © 인하프레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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