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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돌] 유월이 오면

기사승인 2024.06.02  21:3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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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하나쯤 읽어야 사람 구실 한다.”

강원일보 평사원으로 시작해 국장까지 영전했던 당신께선 은퇴하고도 집에 조선일보와 강원일보 한 부를 두고 읽으셨다. 삶의 낙이라곤 ‘6시 내 고향’과 신문뿐인 듯했다. 당신께서 커다란 대판 신문을 도포 자락 펴듯 ‘촤락’하는 소리는 경쾌했다. 한참 신문을 넘기면 코끝에 스며드는 구수한 종이 냄새도 중독적이었다.

그 때문인지 몰라도, 진로를 고민하던 17살의 나는 문득, 신문기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집 한편에 우두커니 쌓아두고 평소엔 읽지도 않던 녀석이 왜 갑자기 ‘신문’을 만들고자 했는지 잘 모르겠다. 지금도 누군가 ‘신문기자’가 왜 하고 싶냐 묻거든, 뚜렷이 답할 수 없다. 그저 학보사에서 매일 같은 새벽 마감을 견디면서도 ‘신문이 운명인 것 같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되뇌었을 뿐이다.

그렇게 고등학교 신문부 3년, 인하대학신문 3년. 장장 6년 동안 신문과 인연을 맺었다. 평생 ‘인하대학신문 편집국장’으로 살 줄 알았건만, 끝은 있었다. 울적함이 찾아왔다. 마감 스트레스가 없어져 한순간 들떴지만, 더 이상 글쟁이로서 가치를 증명하지 못한다는 뜻인 줄 알았다. 20대 초반을 온전히 바친 편집국이 나 없이도 돌아가는 모습에 샘이 났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도망치듯 입대했다.

군대에서 뇌를 비우다 보니 ‘기자’란 직업에 회의가 생겼다. 일상과 업무가 구분되지 않는 삶, 학벌 중시 풍조… 그냥 평범한 직업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맴돌았다. 전과를 할까…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할까… 고민이 고민을 낳던 말년병장 시절 그날, 당신께선 나를 찾아왔다.

“군생활은 할만하고?…” “군생활이 군생활이죠 뭐…” “점심은 드셨어요?...또 라면 잡수셨어요?” 기억 속 낡은 소파에 앉아 대화를 나눴다. 세월이 스쳐 간 듯 인조가죽이 벗겨져 보잘것없지만 더할 나위 없이 폭신한 그런 소파였다. 대화는 너무나 일상적이었지만 막상 한 번도 나눠본 적 없어 어색한, 그런 말을 주고받았다. 내가 이렇게 당신과 대화 나눴던 적이 없었던가. 고등학생 이후로 아픈 모습밖에 보지 못했던 당신께선 그 어느 순간보다 쾌활해 보였다. ‘아프신 거 아니었나?...수술이 잘 끝났나 보구나…’ 생각이 들 때쯤 알아챘다. “아, 꿈이구나.” 낯부끄럽지만 ‘감사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전했다. 당신께서 멋쩍게 한번 웃으시더니, 잠에서 깨버렸다.

“축하합니다. 합격하셨습니다.” 운이 좋았다. 지난 5월, 비록 계약직 인턴이지만 조선일보에서 신문 편집을 배울 기회를 얻었다. 전역하고 얻은 첫 성취였다. 자연스레 기자가 아닌 다른 길을 가려던 반발도 사그라졌다. 무엇보다 좋은 건 당신께서 즐겨 읽던 신문을 만드는 데 일조한다는 점이었다.

5년 전 오늘, 모의고사 하루 전날인 6월 3일. 나를 신문의 세상으로 끌어들인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오늘 네 번째 ‘유월 삼일’을 맞는다. 아직 내가 만든 헤드라인 하나 그대로 달 수 없는 풋내기지만,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 언젠가 그 깐깐한 당신께서도 ‘무릎을 탁 칠만한’ 헤드라인을 뽑노라면, 액자 앞에 신문 한 장 들이밀며 물어보겠다. “제목 한번 기막히지 않아요?”

올해따라 당신이 더 보고 싶은 유월이다.

김범수 (정외·3) ㅤ

<저작권자 © 인하프레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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