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데스크] 작품 같은 삶이 되길

기사승인 2024.06.02  21:35:52

공유
default_news_ad1
박재형 편집국장

“…계속 생각해 봐야 할 일은, 각자 자신의 삶을 다스리고, 자기 삶에 관심을 갖고, 자신감과 자부심을 갖고 사는 게 무엇인지가 중요한 거야. 그러면서 동시에 나 자신의 삶을 단순하게 흘러가는 거라고 생각하지 말고, 어떤 작품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좋은 거겠지. 그게 쉽지 않은 건 사실이야…”

이제는 은퇴하신, 한 철학과 교수님이 마지막 수업에서 남기신 말이다. 작은 이야기 한 조각에서, 우리네 삶에 관한 여러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듯하다.

인간은 대체로 어떤 절대적인 이상을 상정한다. 예를 들어서 우리는 ‘자아’가 있다고 확신하며 추구한다. 문제는 맹목적인 자아의 추구가 공허하다는 것이다. 불변하는 자아가 반드시 있고 자아를 추구하려는 나쁜 습관 때문에, 자신의 삶을 반드시 표현해야만 하는 것으로 잘못 생각돼 왔다. 자아실현이 긍정적으로 작용하지만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자아와 현실의 간극은 괴로움을 불러온다는 점도 고민해야 할 문제다. 자신의 삶을 다스리는 데에 균열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에 균열은 더 커진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대중 모두가 중요하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더라도, 적어도 그렇게 믿고 있다. 우리 모두의 삶이 중요한데, 실제 대다수의 삶은 중요하게 취급받지 못한다.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중요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거의 대다수가 존중받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이는 벗어나기 어려운 과제이며, 이 상황 안에서 자아를 추구하려는 사람은 힘들 수밖에 없다. 여기에 더해 모두의 삶이 중요하다는 말은 종종 정치에 포섭된다는 점도 인식해야 할 것이다.

현대에는 표면상 모두에게 가능성이 열려 있기는 하다. 그리고 실제로도, 현대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중요시하고 독립적인 삶을 추구하려 한다. 어떤 좋은 모델을 설정해 놓고 우리의 삶을 가꾸어 나가려는 시도가 일정 부분까지는 의미도 있다. 그러나 시스템 아래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고용이 돼야 하고, 돈을 벌어야 하는 등의 한계로 독립적인 주체로 살기란 불가능하다. 독립적인 주체라는 건, 고대 그리스에서 대다수의 사람을 노예로 부리는 시민의 삶 속에서나 추구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지, 적어도 현시점에서는 어렵다.

위의 여러 난점을 차치하더라도, 어떤 삶이 아름답고, 어떤 삶이 아름답지 못하다고 결정 지어지는 것은 슬프다. 하지만 나쁜 습관이 사라지지도 않을 테다. 그렇다면 삶을 추구하는 작업은 어디에서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까. 인간이 뭔가에 천착하지 않으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저 하늘에 빛나는 별이 아닌, 자기 삶으로 돌아와야 한다. 하늘의 높은 관점이 아니라, 지상의 낮은 관점에서 삶을 고민하고 생각해야 한다. 이상의 깨끗함을 바라보며 간극에 좌절하지 말고, 현실의 더러움을 기어가자. 내 옆에 있는 것들과 관계를 맺으면 모든 가능성이 펼쳐진 무한한 이야기가 있다. 물론, 이 과정은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때 비로소 삶은 단순하게 흘러가지 않을 것이며, 어느새 어떤 작품 같은 삶에 이를 수 있다.

끊임없이 고민할 이야기다. 각자의 삶이 아름다운 작품 같은 삶이 되기를 바라며, 마무리한다.

박재형 편집국장 qkrwogud0@inha.edu

<저작권자 © 인하프레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