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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용현동 학생자치에 찾아온 ‘지각변동’

기사승인 2023.11.28  16:3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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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기 학생자치사 2부

*편집자 주: 서술의 편의를 위해 직책이 없는 등장인물은 호칭을 생략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인하대학신문 1310호, [인하의 '애국'과 '청년'은 어떻게 사라졌나?]에서 이어짐.

그날은 화요일이었다. 생활과학대(이하 생활대)[1] 열람실에서 공부하던 A씨는 열람실 밖 복도에서 포스터를 부착하며 잡담을 하던 학생회 임원들에게 “조금만 조용히 해달라”고 요청한다. 이에 학생회 임원은 역으로 “생활대 학생이 맞느냐”며 따져 물었고, 분노한 A씨는 인하광장에 그 사실을 공론화하는 동시에 열람실이 너무 지저분하다며 불만을 토로하는 글을 올린다. 생활대 학생회장은 즉시 사과문을 올리며 재발 방지를 약속했고, A씨가 사과를 받아들이면서 사건은 조용히 마무리되는 듯싶었다. 그러나 생활대 학생인 B씨가 A씨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댓글을 남겨 다시 논란이 일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흔하디흔한 구설수로 보였다. 2011년 4월 5일, 생활대 학생회 임원들은 열람실 앞에서 “아주 약간 시끄럽게 떠들며” 포스터를 붙이고 있었다. 그 별 볼 일 없는 소음이, 그로 인해 촉발된 우연의 연속이, 30년 넘게 이어져 온 인하대 학생운동을 파국으로 몰아갈 도화선이 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침내 폭발한 화약고

B씨는 “생활과학대는 가족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데 A씨는 생활대를 무작정 깎아내리는 글을 썼다. 자신의 행동이 무엇이 잘못됐는지 모르겠다면 군대를 다시 다녀오라”며 A씨를 비판한다. 이후 B씨가 전직 생활대 학생회 임원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명 ‘군사문화’가 생활대에 존재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7일 자정 무렵부터 시작된 논란이 오후까지 이어지던 가운데, 조휘진(고분자공학)[2]은 디시인사이드 유저 C씨로부터 “생활대의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라는 정보를 접한다. C씨는 “생활과학대 새내기새로배움터(이하 새터)에서 레크레이션을 하는데 맨발로 오리걸음을 걸음을 하며 눈 위를 걷게 하거나, 옷을 벗어야 하는 게임을 시켰으며, ‘엎드려 뻗쳐’같은 얼차려도 있었다”고 전했다.

C씨로부터 관련 사진들을 입수한 조휘진은 인하광장에 생활대 새터 운영진을 강도 높게 비판하는 게시글을 올렸다. 대부분의 학생이 인하광장을 이용하던 시절이지만, 학생회의 ‘관례’를 공론화해서 비판했던 사례는 그때까지 없었기에 조휘진은 일약 유명 인사로 등극한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제까지 학생사회에 불만을 품고 있었으나 배척에 대한 두려움으로 나서지 못하던 이들은 조휘진을 ‘용감한 투사’로 여기며 증언을 쏟아냈다. 조휘진은 당초 사모임의 수장이 아닌, 총학생회(이하 총학)가 관련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으나, 총학이 단과대의 문제에 일일히 개입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취하자 직접 폭로를 이어간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문제가 있었던 단위는 바로 연극영화학과(이하 연영과)였다. 조휘진에게 제보한 학생은 ‘집합’, ‘얼차려’, ‘욕설 및 인격모독’, ‘구타’, ‘협박 및 금전갈취’ 등이 연영과 내에서 성행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연영과 학생회장은 “제보한 내용 중 대부분은 사실이 아니”라며 부인했으나, 연영과 05학번 D씨가 인하광장에 “제보자가 언급한 내용은 모두 사실”이라고 밝히자, 상황은 뒤집혔다. 연영과 학생회는 “과거엔 그런 일들이 있었으나 현재는 없다”고 번복한다. 연영과를 향한 비판 여론이 끓어오르자 총학은 “우리가 사태를 해결하겠다”며 나섰고 조휘진은 “지켜보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생활대 소음 문제부터 연영과 폭로까지 걸린 시간은 단 1주일이었다.

2011년 9월 총투표 당시 본교 후문가의 모습. 이 해 학생총투표는 애국인하가 몰락한 결정적 계기였다.

막 내리는 ‘애국인하의 시대’

처음엔 특정 학과의 문제로 시작한 연영과 사태는 이내 총학으로까지 번진다. 당시 총학은 예술체육대학 본부에 진상 조사를 의뢰하고, ‘연영과 문화개선을 위한 공청회’를 개최하도록 하는 등 나름대로 조치를 취하기는 했다. 그러나 총학의 개입은 ‘학과 내에서 자정작용이 일어나도록 유도하는' 정도에 그쳤다. 총학이 개별 학과 문제에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은 학과의 자치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첫 폭로 이후 두 달가량이 흐른 6월 초 무렵, 조휘진은 연영과 사태에 관한 추가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조사에 나선다. 이 과정에서 조휘진은 예술체육학부에서 자체 조사한 결과보고서를 입수한다. “연영과에는 얼차려 및 폭력이 일절 없고, 2009년에 구타 사건이 발생한 적은 있으나 당사자들끼리 잘 합의했으며, 조휘진은 과격한 말로 학생들을 선동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격분한 조휘진은 “연영과가 거짓말로 사태를 덮고 넘어가려고 함에도, 총학은 자정 작용을 믿겠다는 말로 방관하고 있다”고 강경하게 비판한다. 이후 ‘애국인하’의 정치적 색채가 학생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면서, 총학 활동에 냉소적인 학생들은 점차 늘어갔다.

애국인하 하락세에 쐐기를 박은 사건은 9월에 있었던 ‘학생총투표 연장 논란’, 이른바 ‘47% 사건’이었다. 총학은 당시 유행하던 ‘반값 등록금’ 운동의 방향을 승인받기 위한 안건을 상정한다. 이 투표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중선위)가 투표 시간을 당초 계획보다 1시간 연장하면서 파문이 일었다. 당시 학생회칙상 학생총투표 결과를 개표하기 위해서는 50% 이상의 학생이 투표에 참여해야 했다. 그러나 총학과 중선위는 사전에 ‘투표율이 47% 이상일 경우 투표 시간을 1시간 연장한다’는 합의문을 작성했고, 이에 따라 투표 시간을 연장했다. 투표율 미달에 따른 투표 시간 연장은 90년대부터 학생회에서 관례적으로 용인돼 왔으나 학생회칙에 관련 조항은 존재하지 않았다. 인하광장에는 “적법한 절차에 의해서 진행돼야 할 총투표를 임의로 연장한 것은 회칙에 어긋난다”며 비판하는 글이 쏟아졌다.

그로부터 한 달가량이 지난 후, 애국인하 총학에서 임원을 맡았던 유정인(산업공학)이 ‘비운동권’을 선언하고 독립해서 출마했다. 당초 유정인은 애국인하로 출마하고 싶다는 의향을 밝혔으나 학생회 경험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내부에서 지지를 얻지 못했다. 그해 11월 열린 선거에서 ‘애국인하계열 비운동권’인 유정인과 ‘정통 애국인하’ 소속 선민지(산업공학)가 맞붙었으나 유효 투표율 미달로 당선자를 내지 못하고 마무리된다.

이듬해 4월 열린 재선거에서 유정인은 단독 후보로 출마했다. 투표 무산 이후 공약을 상당 부분 다듬은 유정인은, 가까운 5년간 열린 단일투표 중 최고 투표율인 45.2%를 기록하며 제32대 총학생회장에 당선된다. 2012년 총학은 정치적 활동 중단과 86%라는 높은 공약 이행률로 학생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 해 열린 제33대 총학 선거에서는 ‘제1회 인하대학교 국토대장정’에서 대장을 맡았던 이원근(전자공학, 비운동권)과 공과대학 학생회장 채원호(환경공학, 애국인하)가 경선을 벌였다. 채원호가 당적을 밝히지 않고 출마했다는 점이 여론의 뭇매를 맞으며 두 배가 넘는 득표율로 참패를 기록한다.

역도부 사태와 비운동권 내전

제33대 총학 선거 이후 비운동권 쪽으로 완전히 민심이 돌아섰다는 점이 확인되자, 애국인하는 학생사회에서 주도권을 상실한다. 총학과 동아리연합회(이하 동연)는 비운동권 인물이 정권을 잡았고, 총대의원회(이하 총대)는 과거부터 학생운동과 어느 정도 선을 긋고 있었다.

2013년 새 학기가 밝아오고 자치기구들이 활동에 열을 올리던 4월, 중앙동아리였던 ‘역도부’ 임원들이 내부 규칙을 이유로 신입 부원을 폭행했다는 사실이 조휘진에 의해 밝혀진다. 당시 역도부장과 역도부 훈련부장은 동아리에서 탈퇴하고 싶다는 신입 부원들에게 “탈퇴하기 위해서는 각목으로 50대를 맞아야 한다”고 밝힌 후 폭행했다. 4월 10일, 역도부는 이 사건을 이유로 동연에서 제명된다.

그로부터 한 달 반가량이 흐른 5월 29일, 동연은 ‘역도부 부활의 건’을 전체동아리대표자회의(전동대회)에 상정한다. ‘가결 시 정식 동아리로 복귀 및 봉사활동 200시간 부여, 부결 시 가등록 동아리로 복귀’한다는 내용이었다. 해당 안건은 가결됐지만, 동연 회칙상 ‘봉사시간 부여’라는 징계가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역도부 제명’이라는 기존 의결을 유지하는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아 논란이 일었다. 최초 폭로자였던 조휘진은 “찬성도 부활, 반대도 부활인 해괴한 투표를 철회하고 관련자는 책임을 지라”는 글을 인하광장에 올린다.

그 글을 본 당시 동연 회장은 조휘진을 불러 “역도부 동문회로부터 협박을 받아서 그랬으며, 도움이 필요하다”[3]고 말한다. 조휘진은 “협박을 했다고 해서 그대로 굴한 것도 문제가 있으니, 스스로 탄핵안을 발의하고 동아리대표자들에게 용서를 구하라”고 요구했고, 동연 측에서도 이를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해진 시한까지 탄핵안 발의가 이뤄지지 않자 조휘진은 ‘동연 회장의 즉각 사임’을 요구하며 5호관 로비에서 무기한 단식 투쟁에 나선다. 단식 시작 며칠만에 조휘진의 건강이 급격히 악화했다는 소식이 들리자 동연 회장은 사의를 표명한다.

역도부 사태가 이어지는 와중에, 조휘진은 연영과 사태 때와 마찬가지로 ‘총학의 적극적인 개입’을 요구하나 이원근 총학생회장은 “총학이 할 일을 고민해 보겠지만, 기본적으로 이 사건은 동연 소관”이라는 입장을 취한다. 이 사건으로 ‘비운동권의 아이콘’이었던 조휘진은 당시 비운동권 총학을 “총학 홍보에 도움이 되는 사업만 지속하는 최악의 학생회”라며 격렬하게 비판했다. 역도부 사태에 대한 학생들의 공분이 일어난 상황에서, 운동권 학생회에 비판적인 학생들 사이에서 강력한 지지를 받던 조휘진마저 대립각을 세우자, 당시 비운동권 학생자치기구들은 지지세를 크게 상실한다.

동아리연합회장 사임을 외치며 단식투쟁을 하는 조휘진(고분자공학) 학생

 “학생사회 재건의 해”

조휘진은 “비운동권 학생회는 ‘무조건 다수에 의한 복지’가 아닌 개인이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에 직면한 학생들을 보호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며 총학생회장 선거에 출사표를 내민다. 그는 2013년 11월과 2014년 4월, 두 번의 도전을 거쳐 제34대 총학생회장에 당선된다. 이 당시 조휘진이 내세웠던 기조와 태도는 2021년 총학과 2023년 총학에도 영향을 미쳤다.

제34대 총학의 기조는 △총학생회 정부론(총대의원회 의회론) △세력형성 거부 △학생회 임원의 무한 책임 강조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중 ’학생회 임원의 무한 책임’은 “대표자의 전인격적 희생”을 강조하던 과거 운동권 총학의 태도로부터 어느정도 영향을 받았다. 또한 “세력이 형성될 경우, 정파의 이익을 학생 전체의 이익보다 우선시 할 수 있다”며 출마 이전부터 함께한 ‘인하대닷컴(아웃사이더연합의 후신으로 ‘아웃사이더를 위한 학교생활 정보 제공’을 모토로 하는 사이트)’ 인원을 총학 인선에서 전격 배제했다.

이전까지 총학은 ‘노동조합’과 같은 이익단체로서, 학생 전체의 이익을 하나로 결집해 대표하는 기구로 이해됐다. 그러므로 학생회의 권력은 각 단위의 이익을 대표하는 학생회장들이 모인 ‘중앙운영위원회(이하 중운위)’에서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조휘진은 집행기구에 지나치게 큰 자율성이 부여될 경우 ‘독단’과 ‘부패’를 예방할 수 없다는 이유로 “총학은 정부의 역할, 총대는 의회의 역할을 하도록 해 서로 견제해야 한다”는 ‘총학생회 정부론(총대의원회 의회론)’을 주장한다. 조휘진은 ‘권력분립의 원칙’에 입각해 학생자치구조 전반을 개편하는 동시에, ‘2013년 생활대 학생회비 횡령 사건’과 같은 부패를 예방하도록 ‘공개행정’ 원칙을 학생자치에 적극 도입하는, ‘중앙학생회칙전부개정(이른바 회칙개정)을 추진한다.

그러나 2014년에는 회칙개정이 제대로 추진되지는 못한다. 2014년 박춘배 총장이 ‘인하대학교 구조조정’ 안을 발표하는데 이와 관련해 중운위에서는 총학과 단과대학 학생회들 사이에서 논쟁이 벌어졌다. 가장 문제가 된 사안은 ‘단과대학 통폐합’이었다. 총학은 “정원 감축에 따른 혜택이 적지가 않기 때문에 본교 발전을 위해서 정부 시책에 따라 인원 감축을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단과대에서는 “학교가 구성원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은 채 통폐합을 추진한다”며 강력하게 반발한다. 결국 조휘진 회장의 주요 공약이었던 회칙개정은 제대로 화두에 오르지도 못한 채 임기가 끝난다.

돌아온 ‘투쟁’의 시대

2014년 말, 공대 학생회 임원이었던 현승훈(조선해양공학)과 IT공대 회장 출신 최성범(컴퓨터공학)이 총학에 출마해 당선됐다. 현승훈이 2009년 총학에서 임원을 맡은 전력이 있었기 때문에 이들을 ‘애국인하’로 분류하는 이들도 많았으나, 실제 사정은 조금 복잡하다. 이전 총학이 ‘한총련’이나 ‘한대련’과 같은 외부 단체와 연합을 맺고, 여러 사회정치적 현안에 집중한 데 반해, 이들 총학은 학내 문제가 아닌 사회정치적 문제에는 적극적으로 의견 표명에 나서지 않았고 외부 학생운동 세력으로부터도 ‘비운동권’으로 간주됐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이들이 ‘정통적인 의미의 애국인하’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들의 활동이 총학의 자체적인 사업보다는 ‘재단을 향한 투쟁’에 편중돼 있었고, 과거 애국인하 학생회에서 중책을 맡았던 인물을 총학 예하기구장으로 임명하기도 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2015년 총학은 과거 애국인하 총학의 행태를 일정 부분 계승한 ‘범(凡) 운동권’으로 정의될 수 있다.

이들은 “2014년 총학이 학교 본부의 요구에 무비판적으로 따랐다”며 학교본부와 재단에 대해 강력한 투쟁을 전개한다. ‘재단전입금 100% 확충’, ‘(당시 건설 중이던) 60주년 기념관 공간계획에 학생들의 의사 적극 반영’, ‘기업식 구조조정 철폐’ 등이 이들의 주된 요구사항이었다. 이들은 ‘올바른 학생회’는 ‘권리를 위한 투쟁’을 벌이는 학생회라고 여겼다.

2015년 학생총회 당시 모습. 이 해 학생총회는 정족수 미달로 무산됐다.

 

 

꼬여가는 회칙개정의 길

2015년 5월, 현승훈 총학생회장은 ‘교육환경 개선 및 공간 확충’ 요구안과 관련, 학교본부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기 위해 학생총회 개최를 시도했다. 그러나 개회 정족수인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해 무산된다. 현 회장은 “학생총회 무산 시 전체학생대표자회의(이하 전학대회)에서 해당 안건을 의결할 수 있다”는 회칙상 문구를 근거로 ‘전학대회’를 개최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전학대회를 규정한 (구) 인하대학교 학생회칙 제5장 앞에 ‘전학대회 삭제’라는 문구가 삽입돼 있다는 점으로 인해 논란이 불거졌다. (구) 회칙에는 전학대회의 권한과 역할, 절차를 다루는 조항과 전학대회를 삭제한다는, 모순적인 문구가 공존하고 있었다. 이후 밝혀진 바에 따르면 2006년 회칙개정을 통해 의결된 학생회칙 최종안이 소실되고, 회칙개정 과정 중간에 쓰인 ‘개정안’이 학생회칙으로 통용되고 있었다. 말그대로 ‘완성되지도 않은’ 회칙이었기에 그와 같이 모순된 규정이 존재했던 것이다. 이에 따라 학생회칙을 개정할 필요성이 다시 한 번 대두됐다.

김의진(국제통상학) 총대 의장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회칙개정특별위원회(이하 회개특위)를 소집했고, 조휘진 전 회장도 개정안 작성에 관여했다. 회개특위 심의 과정에서 △세칙 개정의 주체 부재, △지나친 선거성립선 완화 필요성 △인사 및 재정 투명성 확보 등의 문제가 함께 논의되면서 회칙전부개정안이 작성됐고, 이는 2023년 현재 통용되는 회칙의 모태가 됐다. 이 과정에서 집행기구에 소속되면서, 강력한 의결권을 가지고 있던 중운위는 폐지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힌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이유로 총투표 상정이 불발되며 2015년 회칙개정은 이뤄지지 못했다.

2016년 총대 의장으로 당선된 이서준(국제통상학) 의장도 다시 한번 회칙개정을 추진한다. 2016년 회개특위는 이전 회개특위에서 작성된 초안을 바탕으로 논의를 이어간다. 임기를 마치고 총학 예하기구인 학원발전추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 현승훈 전 회장은 회개특위 자문위원으로 참가해 “중운위를 폐지하는 게 아니라,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11월 열린 총투표에서 ‘범 운동권’ 인사들이 회칙개정을 전폭적으로 보이콧하면서 그해 회칙개정 총투표는 성사되지 못한다. 회칙개정 총투표와 함께 열린 총학 대표자 선거는 2015년 총학 사무국장 출신 윤민영(경영학)과 2014년 총학 비상대책위원장(現 회장 권한대행) 출신 비운동권 박재형(아태물류학)이 경선을 벌였으나 회칙개정 총투표 보이콧의 여파로 투표율이 낮아지면서 결국 당선자를 내지 못한 채 마무리된다.

-21세기 학생자치사 3부에서 계속


[1] 소비자아동학과(소비자학과, 아동심리학과), 식품영양학과, 의류디자인학과로 구성됐던 단과대로,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단위다..

[2] 당시 함께 식사할 사람이 없는 학생들을 위해 '아웃사이더연합'이라는 이름의 식사모임을 주관한 인물이며, 디시인사이드에서 '제국치천'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했다.

[3] 그러나 조휘진이 이 내용을 인하광장에 밝히자, 동연 회장은 “협박 받은 사실이 전혀 없다”며 말을 번복한다.

이기원 기자 qnal44@inh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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