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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각본은 재외동포청, 무대는 인천, 주연은 하나(一)

기사승인 2023.11.26  22: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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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은 이름이자 단어이며, 강력한 힘을 지닌다. 마법사가 외는 어떤 주문보다도 혹은 영혼이 응하는 어떤 주술보다도 강하다.” 재일동포의 삶을 그려낸 소설 『파친코』의 첫 페이지를 시작하는 이 말은 고향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한다. 결국 ‘고향’이라는 말이 존재할 수 있었던 건, 같은 공간에서 삶을 부대끼며 살아왔던 ‘우리’ 동포라는 존재가 있었기 때문일 테다. 우리에게는 정겨운 삶의 터전으로서 고향이 항상 옆에 있었던 공간이었을 수도 있지만, 여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리움의 표상일 수도 있다. 재외동포. ‘한국’이라는 이름을 마음에 강력히 새기고 세계 곳곳에서 지내는 사람들. 마침내 또 다른 ‘우리’들의 그리움을 해소하기 위해 ‘한민족’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2023년 6월, 재외동포청이 출범했다.

전쟁기념관에서 재외동포 학생들이 아리랑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가깝지만 먼 존재, 재외동포라는 이름

영화로 재해석되며 세계의 이목을 이끌었던 소설 『파친코』 속 주인공, 올해 여름 극장가를 흔들었던 영화 ‘엘리멘탈’의 감독까지. 앞서 소개한 인물들과 같이 재외동포의 삶과 그들의 활약은 다양한 매체들을 통해 접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재외동포에 대한 정의를 정확하게 이해하거나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도 다분하다.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과 『재외동포기본법』에 따르면 재외동포는 1)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외국에 장기 체류하거나 외국의 영주권을 취득한 사람, 2) 국적과 관계없이 한민족의 혈통을 지닌 사람으로서 외국에 거주생활하는 사람, 3)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하였던 자 또는 그 직계비속으로서 외국 국적을 취득한 자(이하 ‘외국국적동포’)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람들로 규정하고 있다. 외국에 거주하는 한국인뿐만 아니라 전세계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모든 사람을 우리와 같은 동포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행법이 정하는 재외동포의 규정에 따라 전 세계에 살고 있는 한국 재외동포 수는 2021년 기준 약 733만 명으로 집계된다. (총 7,325,143명/외국 국적 동포 4,813,622명/재외국민 2,511,521명 출처: 외교부) 정부가 재외동포 집계를 시작한 1971년의 약 70만 명(총 702,928명)이라는 숫자와 비교했을 때, 10배를 훌쩍 뛰어넘은 수치다. 이어진 2022년에는 한국 F4(재외동포) 비자 입국자 수가 전년 대비 18.8%가 증가했다는 통계청 결과가 발표되면서 모국을 찾는 재외동포들의 활발한 움직임 또한 증명되었다. 이제 한국은 733만 명의 동포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지원에 대한 기대를 직면할 차례였으며 이를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필요성은 커지고 있었다.

*F4 비자: 재외동포 비자로, 법무부 장관은 대한민국 안에서 활동하려는 외국 국적 동포에게 그 신청에 따라 재외동포 체류자격을 부여할 수 있다.

전쟁기념관 평화의 광장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재외동포 학생들.

재외동포청은 어떻게 설립됐나

사실 한국에 재외동포를 보호하고 지원하는 활동이 부재했던 건 아니다. 실제로 1997년 10월 30일, 재외동포 교류 사업을 위해 외교부 산하 공공기관으로 재외동포재단이 설립됐다. 그러나 재외동포재단은 특정 정책과 제도, 예산 수립에 대한 권한을 받지 못했다. 재외동포재단의 설립 비전에 반해 그들은 외교부 산하 기관으로서 수탁 업무만 수행할 수밖에 없는 한계에 부딪혔다. 결국 재외동포 관련 영사, 법, 교육 같은 실질적인 행정업무는 외교부와 법무ㆍ교육ㆍ행정안전부 등 여러 조직에 흩어져 재외동포들은 복잡한 행정 절차에 혼란과 불편을 겪었다. 이제는 명목상의 기관이 아닌, 세계 곳곳 한국의 도움이 필요한 재외동포들에게 일관성 있는 정책과 체계적인 지원을 제공해야 했다. 동포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기구가 등장해야 할 순간이었다.

2022년 10월 6일, 재외동포청 신설 발표와 함께 전 세계 732만 명의 동포와 그에 맞춰 제기되는 정책 변화의 필요성에 정부가 드디어 응답했다. 재외동포청 신설에 대한 본격적인 설립 논의가 시작된 것이다. 신설 발표 이후 6개월이 지난 2023년 4월 27일에는 재외동포기본법이 국회 재석 252인 중 찬성 251인, 기권 1인으로 통과됐다. 이로써 재외동포청의 방향과 비전을 만들 법적 근거가 모두 갖춰졌다.

이제는 재외동포청의 깃발을 어디에 꽂을 것인가를 두고 결정하는 일만 남았다. 재외동포청도 대한민국 외교부 외청으로서 중앙행정기관의 역할을 다할 수 있는 만큼 어디에 본청을 둘 것인가는 중요한 상징성을 가진다. 또한 신설되는 정부 기관 유치에 따라 파생되는 지역의 상징성과 사회경제적인 이익도 무시할 수 없다. 실제로 재외동포청이 인천에 유치되기까지 과정에서 지역 간 치열한 경쟁이 이어졌다. 그렇게 재외동포청 소재지에 대한 많은 고민 끝에 2023년 5월 9일, 재외동포청 개청을 한 달 남기고 재외동포청 본청이 인천에 설립된다는 사실이 공표됐다. 그동안 외교부는 여당과의 협의를 거쳐 재외동포청 소재지를 논의해 왔다. 그중 재외동포의 △편의성·접근성 △업무 효율성 △지방균형발전 △행정조직의 일관성 △소재지 상징성 등의 기준을 바탕으로 후보지를 압축했고, 최종적으로는 재외동포들의 선호도가 높은 서울과 인천 중 인천을 소재지로 선정했다. 인천 지역정치권과 시민사회의 노력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1902년 12월 22일, 인천 제물포항에서는 첫 이민을 떠났던 동포들이 있었다. 과거 인천은 조국을 두고 떠나는 동포들의 씁쓸함이 묻어나는 도시였다.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면서도, 사랑하는 국가를 두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씁쓸함은 이젠 오늘날 인천의 재외동포청 개청으로 돌아왔다. 근대 이민의 시작지, 개항장을 통해 오랜 시간 발전된 문화 다양성의 도시, 바다와 하늘로 통하는 길을 가진 도시, 인천. 인천은 드디어 재외동포청을 품었다. 동포들의 다양성과 지나온 삶의 씁쓸함을 부드럽게 품어 새로운 역사를 만들 수 있게 됐다.

곤룡포를 입고 포즈를 취하는 김크리스티안씨의 모습.

재외동포청이 그리고 있는 청사진

올해 6월 5일, 시대적 흐름을 타고 드디어 재외동포청이 출범했다. 이제 본청은 송도, ‘재외동포 서비스지원센터 통합민원실’은 서울 광화문에 위치해 업무를 수행한다. 이러한 이원화는 업무의 효율성 및 재외동포청의 중점 과제 중 ‘재외동포를 위한 원스톱 민원 서비스 지원’에 따른 결과다.

출범일에 맞춰 문을 연 통합민원실은 365일 24시간 콜센터 형식으로 운영되며, 재외동포의 병무, 출입국, 관세 등 민원 상담과 행정정보 안내에 도움이 필요한 재외동포들이 언제든지 소통할 수 있는 다국어 콜센터로 자리 잡았다. 외교부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도훈 외교부 제2차관은 개소식 기념사에서 “해외 재외공관의 영사 서비스와 함께 통합민원실과 동포콜센터의 내실 있는 운영을 통해 민원 서비스를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통합민원실 지원 외에도 재외동포청은 다른 중점 추진 과제를 앞세워 정책을 꾸려 나간다. ‘재외동포 사회와 모국간 연대 강화 및 상생발전 실현’과 관련된 중점 과제로는 크게는 △정체성 함양 및 모국과의 유대감 강화 △글로벌 민족 네트워크 활성화 △소외된 동포 지원들이 있다.

또한 올해 5월 제정돼 이달 10일부터 시행되는 ‘재외동포기본법’ 제11조를 바탕으로 재외동포청 산하기관인 재외동포협력센터가 신설됐다. 재외동포협력센터는 재외동포를 대상으로 초청, 연수, 교육, 문화, 홍보 사업 등을 진행한다. 다양한 행사를 통해 동포들의 자긍심 고취를 도우며 재외동포청의 과제 중 ‘정체성 함양 및 모국과의 유대감 강화에 기여한다.

재외동포청은 한인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동포사회와 모국의 상생 발전을 돕기 위해 또 다른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실제로 재외동포청은 개청 이후로 ‘세계한인비즈니스 대회’ ‘2030 세계한인회장대회’ ‘찾아가는 국적‧병무 설명회’ 등을 개최하며 네트워크 구축 사업을 추진해 왔다.

마지막으로 ‘소외된 동포 지원 강화’ 또한 재외동포청 업무의 핵심 포인트다. 재외동포청 본청 홈페이지의 재외동포청 조직도에 따르면, 재외동포청 정책국 안에서도 △미주유럽동포과, △이주러시아동포과, 교류협력국 안에서도 △차세대동포인권과 등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이는 고려인, 사할린 동포, 해외입양동포 등 그동안 소외됐던 동포들을 대상으로 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의미다. 재외동포청이 전문화된 부서를 통해 소외된 재외동포를 대상으로 실질적인 지원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귀추가 주목된다.

재외동포 학생들이 한복을 입고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재외동포청, 날갯짓을 시작하다

올해 6월부터 지금까지, 재외동포청 내부에서는 체계적인 움직임을 위한 행정 차원의 노력이 진행되는 한편, 재외동포청은 개청 한 달만에 ‘재외동포 대학생 모국 연수’라는 대외적인 행사를 개최했다. 1998년부터 시작된 사업이지만, 이번 모국 연수는 재외동포청이 처음으로 주최하는 행사로 재외동포들에게는 그 의미가 컸다. 취재가 진행된 7월 23일 연수에서는 270여명의 재외동포가 전쟁기념관 견학 및 아리랑 합창, 평화선언문 낭독, 한복 문화 체험 등을 하며 재외동포 청소년들 간 소통과 유대감 형성 기회를 제공했다.

한국인 아버지와 조선족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서미란(25) 씨는 재외동포청이 주관하는 이번 모국 연수 활동을 통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다지게 됐다. “한국 영화에서 조선족이 부정적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아서 속상했어요. 근데 중국에서는 ‘넌 한국 사람인데 왜 중국에 있냐’는 소리도 들었거든요.” 한국과 중국 사이 겪었던 차별은 그에겐 정체성 혼란을 가중하는 쓰디쓴 과정이었다. 그런 어려움 속에도 서미란 씨는 상황을 공감하고 이해해 주는 한국인 친구들을 만나 많은 위로를 받았다고 전한다. 그는 “이번 모국 연수 행사에서 나아가 또 다른 한국인 친구들과 대화하고 문화교류를 하는 자리가 더 많아져서 재외동포에 대한 편견이 깨졌으면 해요”라며 활동에 대한 소망을 털어놓기도 했다.

“어렸을 때 잘 모르고 한복을 입은 적이 있는데, 성인이 돼서 의미를 알고 다시 걸치니까 인상 깊어요.” 김 크리스티안(22)씨의 가족들은 한국 전쟁 때 경제적 여유를 누리기 위해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간 재외동포다. “아르헨티나라는 국적을 가지고 있지만, 한국인도 맞으니까··· 100% 이게 맞다고 할 수는 없는데 사실 둘 다 맞잖아요.” 그 또한 다른 재외동포들과 마찬가지로 아르헨티나에서 가족들과 살며 정체성 충돌을 겪기도 했다. 혼란스러운 상황 속 그에겐 이번 연수가 자신과 같은 상황에 처한 친구들과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소중한 자리가 됐다. 그는 “함께 어려움을 공유하면 서로 위로가 돼요. 재외동포청을 통해 이렇게 활동하면서 하나로 어우러질 수 있는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행사 현장에서 만난 재외동포들은 이번 행사가 정체성 갈등 해소에 도움이 됐고,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재외동포들과 함께 하나가 될 수 있었던 자리라고 입을 모은다. 곧 재외동포청이 세계 곳곳에 존재하는 재외동포들에게 유대감을 심어주며, 그들이 언제 어디에 있든,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돌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재외동포청과 함께 이번 행사의 총괄 운영을 담당했던 부산 YMCA 김소영 관장은 “매년 하는 재외동포 대학생 모국 연수이지만, 기존에 존재하던 재외동포재단보다 더 격상된 기관이 주최하는 첫 행사로서 의미가 크고 진행하는 우리도 자부심을 가지고 행사에 참여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덧붙여 “앞으로는 재외동포청이 중심이 되어 거주국에서도 재외동포가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서 기능하고 한국의 지위를 향상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많이 만들어 주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앞으로 재외동포청이 더욱 발전하려면?

전문가들 역시 재외동포청의 힘찬 출발을 기대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영향으로 거론되는 것은 달라진 재외동포 지원 방향이다. 본교 국제관계소장이자 재외동포재단 자문위원을 맡았던 이진영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재외동포청이 생김으로써 앞으로 공식적인 기관에서 재외동포 지원의 필요성이 법적으로 보장되고 일관화된 정책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행 재외동포 관련 법률의 부분적인 한계를 언급하며 “재외동포청 설립이 재외동포청 정책의 안정화를 이끌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언급한 ‘재외동포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도 1999년도에 제정됐지만, 재외동포의 정의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이민자들로 규정해 놓고 있어, 정부 수립 이전 하와이나 구소련, 중국으로 이민 간 재외동포들을 제대로 포함할 수 없었다. 하지만 재외동포청의 출범과 재외동포기본법의 탄생으로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해 나갈 수 있는 돌파구가 생겼다.

이 교수는 앞으로 재외동포청에게 남겨진 과제를 덧붙이기도 했다. 이 교수는 한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유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언급했다. 그는 “정체성은 이미지이고 브랜드다. 인하대생도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냐에 따라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결국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중요함”을 말했다. 재외동포도 마찬가지다. 그는 “‘한국인’이 아닌 ‘한인’으로서 정체성을 가지고, 재외동포를 위해 모두가 연대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 또한 재외동포청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마침내 재외동포청의 무대는 막이 올랐다. 모든 길이 통하는 인천이라는 발판을 딛고 재외동포청은 지구촌 곳곳에 살고 있는 ‘우리’들과 함께하는 또 다른 미래를 터 나갈 준비를 한다. 떨어져 있던 거리와, 떨어져 있던 시간 동안 흐려진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우리’로 강력하게 묶는 건 재외동포청이 어떤 청사진을 만들어 낼 것인가에 달려있다. 짧은 순간에 타국에서 팍팍한 삶의 터전을 일궈왔을 동포들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을 테다. 앞으로 재외동포청이 해야 할 일은 흩어진 동포들의 다양한 입장을 오랜 시간 귀담아듣고 수렴하여 공동체로서 하나의 성장점을 완성하는 것이다. 재외동포청이 한민족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모든 동포와 써 내려갈 각본을 기대해 본다.

장서윤 기자 jangseoyun20@inh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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