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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굳센 악을 녹이는, 쓸쓸하고 부드러운 시선

기사승인 2023.02.26  23:0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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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연쇄살인 사건, 제주 전남편 살인사건, 인천 모자 살인사건… 이 밖에도 수많은 범죄의 온상이 세상에 밝혀지기까지. 단단히 얽힌 진실의 실마리를 찾아내는 과정에는 누군가의 부드러움이 있었다. 냉철하고 딱딱한 프로파일러를 상상했다면 오산이다. 푸근한 웃음으로 기자를 반겼던 국내 1호 프로파일러, 이진숙 경위(교육학과 90학번)를 만나봤다.

 

교육학도의 생활 속에서 우연히 찾아온 기회

인하대학교 교육학과 90학번 이진숙. 그의 학적에서 어렸을 적 꿨던 꿈이 드러난다.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평범한 사범대생이었던 그였다. 어느 날 단과대학 선거유세에서 시를 낭독했던 그의 모습은 그가 새로운 길을 바라볼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교수님께서, 시를 낭송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며 학생 생활연구소에서 상담 일을 해볼 생각이 없냐고 먼저 제안하시더라고요.” 감정을 실어 시를 낭송하는 모습에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재능을 알아본 것일까. 교수 추천으로 상담 조교 일을 하게 된 학생생활연구소에서 그는 상담의 매력을 느꼈고, 이어 상담심리 전공으로 교육대학원까지 진학한다.

 

국내 1호 프로파일러가 되기까지

2005년 5월, 한국 경찰청은 ‘범죄분석요원 1기 특채’라는 공고를 낸다. 이는 곧 프로파일러 이진숙의 출발선이자 1세대 프로파일러의 탄생이었다.

당시 이진숙 경위는 상담심리학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고, 교육사회학을 전공으로 박사 과정을 밟고 있을 때였다. 그런 그에게 공고와 함께 선배의 추천은 또 다른 길을 마련했다. “경찰청에 근무하는 선배가 먼저 추천을 해줬어요. ‘너 상담해보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 범죄자를 상담해보는 건 어때?’ 정말 반신반의로 지원했던 것이 1차 되고, 2차 되고, 3차까지 되더라고요.” 또 한 번의 갑작스러운 기회에 처음에는 고민도 많았다. “당시 한국은 프로파일러에 대한 개념도 정립되기 전이었어요. 정말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 합격하고 나서도 갈등이 많았어요.” 그러나 많은 고민이 무색하게, 사람의 마음을 읽는 직업에 매력을 느낀 그는 거침없는 모험심으로 프로파일러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오히려 상담심리학에 이어 교육사회학까지 공부했던 노력은 프로파일러라는 직업을 만나 더욱 빛을 발한다.

상담심리 관련 전공으로 석사 이상의 학위를 가진 사람이 프로파일러의 지원 자격을 얻어요. 그만큼 프로파일러라는 직업이 사람의 마음을 많이 다루는 직업이라는 거죠. 상담은 사람의 속마음을 다루는 건데, 본인도 본인 속마음을 잘 모르겠다고 하는 범죄자들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을 이해하고, 욕구가 무엇일지 파악하는데 대학원 시절의 경험이 많이 도움이 돼요.”

가끔은 본인조차 알지 못하는, 갈대 같은 사람의 마음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아내야 했다.그러기 위해 어떻게 대화를 통해 진심을 끌어낼 수 있을지 끊임없이 생각하는 그였다.

학생생활연구소에서의 생활도 굉장한 추진력을 얻었다. “일과 나를 분리하는 훈련이 잘 돼야 한다”고 말했던 그에게 학생을 상담하기 위해 받았던 교육들은 많은 도움이 됐다. “프로파일러는 늘 범죄를 만나야 하는 직업이에요. 매일 시체 사진을 보고, 범죄자들을 만나고… 다행히 상담 조교 시절, 상담실에서의 나와 진짜 나를 떼어놓는 연습을 많이 해서 힘든 업무강도에도 잘 버틸 수 있었어요.” 지난 대학 생활의 모든 경험은 피와 살이 되어 프로파일러 이진숙의 삶 속에 스며들었다.

 

부드러운 강단으로 범죄를 읽는다.

“전 당신과 이야기하기 위해 온 이진숙입니다. 제가 당신을 뭐라고 불렀으면 좋겠습니까?”

나이, 성별, 범죄의 강도를 떠나 이진숙 경위가 범죄자를 처음 만났을 때 공통적으로 건네는 말이다.

“범죄를 저지르고 처음 상담하러 온 사람들은 자신을 방어하는 기질이 있거든요. 심리적으로 불안한 피해자일수록 본인을 존중해주기를 바라요. 존댓말을 통해 범죄자에게 ‘내가 지금 존중을 받고 있구나’를 깨닫게 해주었을 때 대화가 시작됩니다.” 그의 상담은 ‘라포르’를 기반으로 둔다. 범죄자와의 신뢰와 친밀을 쌓은 후 진실을 스스로 털어놓게 만드는 것이다.

그는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상담 중에도 끊임없이 갈등하는 게 눈에 보인다고 한다. “내가 저지른 죄를 모두 이야기하고 심리적으로 편안해질 것이냐, 끝까지 숨겨서 형량을 적게 받을 것이냐. 아마 두 가지 내면의 갈등이 반복될 거예요.” 결국 그런 범죄자의 마음을 열고 심리적 부담감을 내려놓게 만드는 건 프로파일러의 몫이라고 말한다.

따뜻한 시선으로, 유연함을 가지고 범죄자의 심리를 프로파일링하는 이진숙 경위지만, 모든 범죄자를 그렇게 바라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소아기호증이 있는 범죄자라든지, 사이코패스 범죄자들을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게 잘 안될 때가 많아요. 하지만 제가 그것들을 입 밖으로 표현하는 순간, 프로파일링은 거기서 끝납니다.”

후회와 반성을 하지 않고 적반하장을 취하는 범죄자들 앞에서 그가 대처하는 수단은 고도의 역할극이다. “그런 사람 앞에서는 롤(role) 플레이하는 것처럼, 절 무장하지 않으면 상담 현장에서 도저히 이야기를 들을 수가 없더라고요. 끊임없이 생각하죠. ‘이건 하나의 상황극이다.’나는 이 역할 놀이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 많은 범죄자를 만나기 직전, 그가 되뇌었을 프로파일러로서의 수많은 배역이 눈에 선히 그려진다.

*라포르(rapport): 주로 두 사람 사이의 상호신뢰관계를 나타내는 심리학 용어

 

‘프로파일러’로 산다는 건

묵묵히 프로파일러 일을 해나가는 이진숙 경위도, 어린 피의자를 볼 때만큼은 마음이 안 쓰일 수가 없다. “매번 나이 어린 범죄자를 만날 때면, ‘어린애가 어떻게 이런 범죄와 만나게 되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완벽히 일과 자신을 분리하는 훈련을 거쳤더라도 늘 예상치 못한 현장을 보면 흔들리는 것은 당연했다. 그럼에도 감정을 숨기고 실체로 나아가는 건 프로파일러의 쓸쓸한 숙명이자 앞으로 짊어지고 가야 할 무게였다.

그는 18년의 프로파일러 생활 속, 마음 한편에 자리 잡은 씁쓸했던 이야기 하나를 들려준다.

“7년 전, 14살에 범죄를 저지른 아이와 상담을 진행한 적이 있어요. 용돈을 안 주는 아버지를 효자손으로 때려 살인한 죄를 저질렀더라고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친구는 투레트증후군(Tourette Syndrome)을 앓고 있었고, 부모님이 이혼하신 거예요. 엄마는 재혼해서 그 동네에서 다른 남자랑 살고 있고. 이 사건을 책임지고 세상에 나와서 무엇을 하고 싶냐?’ 물으니까, ‘꼭 엄마랑 살고 싶다’고 대답하더라고요.”

 

이진숙 경위는 투레트증후군으로 고개를 움직이는 와중에도 울면서 엄마를 찾았던 아이가 생생히 기억난다고 했다. “어른들의 책임이 많은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파요. 아이를 낳기로 선택한 건 어른인데, 어른들은 행복한 양육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 했잖아요.” 물론 모든 범죄자에게 물리적 환경이 완전히 열악하다고 단정지을 순 없다. 그러나 외부로부터 충족되지 못한 심리적 환경에 당연한 영향을 받는 어린 범죄자들을 보면, 어른으로서 느끼는 안타까움은 어쩔 수 없다.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이진숙 경위는 프로파일러라는 직업은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범죄자들에게 사랑과 관심이 왜 필요하냐고 반박할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프로파일러라면 범죄가 나타난 환경과 사람을 분리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범죄자들도 우리와 다 똑같은 ‘사람’들이에요. 우리도 얼마든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잖아요. 우리는 선택했을 때 나쁜 결과가 일어나는 걸 아니까 안 해요. 그런데 범죄자에게 다른 선택이 없었냐고 물어보면, ‘제가 할 수 있는 다른 선택이 있었을까요?’라고 되물어요. 결국 상담을 통해 그들의 새로운 삶의 가능성에 일조하는 프로파일러가 되어야 해요.”

범죄의 실체를 밝혀내는 것뿐 아니라, 그들이 사회에 적응하고 살 수 있는 다른 선택을 깨닫게 하는데 끝까지 책임지는 것이 진정한 프로파일러의 덕목이자 정의다. 이는 사람에 대한 애정과 따뜻한 관심을 통해 범죄에 접근하는 다양한 시선에서부터 출발하고 있었다.

때로는 말을 경청해주는 사람, 때로는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사람으로. 앞으로도 계속될 그의 정의가 범죄에 무뎌진 차가운 사회를 녹일 수 있길 바란다.

 

 

장서윤 기자 jangseoyun20@inha.edu

<저작권자 © 인하프레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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