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기획] 이태원에서 떠난 ‘재난세대’… 청년층에 지지와 공감 필요해

기사승인 2022.11.27  22:42:06

공유
default_news_ad1

‘저도 같은 학생인데 많은 희생자가 발생해서 너무 안타깝고 마음이 무겁습니다. 하지만 희생자들 잘못이 아닙니다. 앞으로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또다시 대형 참사에 젊은이들이 세상을 떠났다. 지난달 29일 용산구 이태원동 119-3번지 일대 해밀톤호텔 옆 골목에 다수의 인파가 몰려 압사당하는 참사가 발생해서다. 서울 한복판에서 158명이 죽고 196명이 다쳤다. 세월호 참사와 코로나19에 이어 연쇄적인 재난에 맞닥뜨린, 청년세대가 겪을 충격이 우려된다.

 

이태원에서 떠난 청년들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추모 공간에 국화다발, 소주병 등이 놓여있다.

지난 18일 기자는 ‘10·29 참사’가 발생한 이태원역 일대를 찾았다. 1번 출구 주변으로 시민들의 애도가 담긴 하얀 국화꽃과 포스트잇이 수놓아졌다. 콜라, 소주, 바나나 우유, 과자 등 청년들이 좋아할 만한 음식들도 쌓였다. 먹먹한 분위기와 함께 추모의 물결이 이어졌다.

참사가 발생한 골목에 설치됐던 폴리스라인은 사라지고 현장은 어느새 정리된 모습이었다. 길이 45m, 폭 4m 안팎의 골목. 기자의 발걸음 네 번이면 이동할 수 있을 정도로 무척이나 좁았다. 희생자들의 손톱자국과 손바닥 모양이 선명히 찍힌 벽을 보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떠나간 젊은 넋들의 ‘통곡’이 생생히 들리는 듯했다.

참사 현장에는 가족을 떠나보낸 비통함, 친구를 떠나보낸 슬픔이 담긴 포스트잇과 편지가 붙여졌다. 특히 20대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추모글이 많았다. ‘또래들을 떠나보내 마음이 무겁다’, ‘우리 누구도 겪을 수 있었던 사고였다’와 같은 글귀가 적혔다. 골목에서 포스트잇을 붙이던 김모(29)씨는 “또래들이 어이없게 희생된 것 같아 믿기지 않는 마음에 이태원을 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울 한복판에서 한두 명도 아닌 158명이 희생된 것이 정말 이해가 안 되고, 꿈을 펼칠 나이인데 너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골목의 벽을 오래 바라보던 한 남성. 눈시울이 붉어지다가 이내 깊은 한숨을 쉬었다. 10·29 참사 이후 트라우마에 시달린 뒤 처음으로 이태원에 온 문지민(20)씨다. 기자의 인터뷰 요청에 한동안 말이 없다가 힘겹게 입을 뗐다. “원래 제가 뉴스 같은 거에 관심이 없는데요. 참사 다음 날 휴대폰을 보고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직접 경험한 건 아니지만 그 상황이 저한테도 굉장히 실감 나게 느껴져서 그 트라우마가 며칠을 갔어요. 갑자기 악몽도 꿨고요. 이제 조금 괜찮아져서 왔는데… 이분들 몫까지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드네요.”

 

인하대마저 덮친 참사 트라우마

참사가 발생한 골목, 추모객들이 벽에 붙은 글귀를 바라보고 있다.

희생자 3명 중 2명이 20대인 가운데, 또래를 떠나보낸 슬픔이 청년들에게 트라우마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여러 전문가로부터 나오고 있다. 기자는 이태원 현장에서 문씨의 이야기를 듣고 본교로 돌아와 학우들을 만나 봤다. 실제 몇몇 학우가 직·간접적으로 10·29 참사 트라우마를 겪고 있었다.

“많은 또래들이 가늠이 안 될 정도로 고통스럽게 죽었다는 것에 마음이 무겁고 슬펐습니다. 전날 이태원에서 행복해하던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선한데… 모두에게 열려 있는 축제에서 이런 비극적인 일이 발생해 참담하게 느껴졌습니다.”

참사 전날 이태원에 방문했다고 밝힌 문과대 A학우는 안도감보다는 죄책감이 먼저 든다며 말을 잇지 못한 채 한동안 슬픔에 잠겼다. 그는 대한민국 안에서 합법적으로 어떤 장소에 갔다면 안전해야 하는 게 당연하지 않냐며 말을 이어갔다. 이번 참사의 책임을 희생자들에게 돌리는 이야기에 공격적으로 반응하게 되는 등 심리적인 트라우마가 생겼다고 말했다.

최근에 이태원을 방문한 경험이 없더라도 뉴스와 SNS를 통해 참사를 접하고 공포와 무력감 등을 느끼는 학우도 많았다. 공과대 B학우, 경영대 C학우, 사과대 D학우는 입을 모아 참사 이후 많은 사람이 몰리는 지하철이나 승강기에서 안전 공포감이 커졌다고 했다. 특히, 공과대 B학우는 같은 일이 벌어질까 두려워 지하철에서 하차한 적도 있다고 밝혔다.

사과대 D학우는 SNS에서 참사 관련 정보를 계속해서 찾아보게 되는 증상을 겪기도 했다. 길거리에 시신이 방치돼 있는 사진을 보고 큰 충격을 받은 그는 희생자들을 조롱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계속 떠오른다고도 말했다. “언젠가 나 또한 이런 사건의 피해자가 돼도 그 누구도 해결해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큰 무력감을 느낍니다.”

올해 졸업생 유모(24)씨는 D학우와 달리 초기에 언론보도를 접한 뒤 이번 참사와 관련된 영상을 의식적으로 클릭하지 않기도 했다. 유씨는 기사를 처음 접하고 일주일간 우울감과 무기력함을 느꼈고, 이후 SNS에서 무분별한 내용의 영상이 올라올까 두려워 일부러 보지 않았다.

 

재난세대, 트라우마 원인은

이처럼 10·29 참사가 특히 20대 사이에서 트라우마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원인은 무엇일까. 임상심리 전문가 최지영(아동심리학과) 교수에게 자문했다. 최 교수는 “이태원에서 20대가 주로 희생된 이번 참사는 특히 청년층에 물리적, 심리적 근접성이 높아 외상적 경험으로 남을 수 있다”며 “나에게도 닥칠 수 있다는 걱정, 불안 등의 후유증으로 이어질 수 있고, 관련 정보를 계속해서 찾아보거나 일부러 차단하고 회피하는 증상까지 다양하게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이번 참사는 청년세대가 일상적으로 찾던 공간인 이태원에서 발생해 충격이 더욱 컸다. 졸업생 유씨는 “사고 장소가 다른 어떤 곳도 아닌 우리 누구나 지나다니는 도로와 골목이었다”며 “허무하게 인생을 마감하게 된 또래들을 보며 공허함을 정말 많이 느꼈다”고 전했다.

20대가 주로 활용하는 SNS상에 압사 상황과 관련된 동영상, 희생자들과 관련된 이미지 등이 무분별하게 퍼지고 있는 것도 우려스럽다. 본교 학생상담센터 이정례 상담전문위원은 “불안한 상황에서 자극적이고 무분별한 정보 혹은 사람들이 쉽게 이야기하는 것들에 노출되면 트라우마가 심화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른 세대에 비해 유독 국가적 재난을 빈번히 마주한 세대라는 점도 뼈아프다. 현재 청년세대는 청소년기에 세월호 참사로 아픔을 겪고, 20대가 돼서 코로나19라는 국가적 재난에 이어 이번 10·29 참사까지 또래가 목숨을 잃는 대형 참사를 다시 목격했다. 이정례 위원은 청년층이 재난에 계속해서 노출돼 관심과 지원이 보다 중요해졌다며 “이것이 세대의 이슈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지지와 공감을 통한 회복

앞으로 트라우마 회복을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야할까. 본교 상담센터는 ‘10·29 참사 관련 트라우마 사건을 경험하는 인하구성원의 마음건강을 위한 안내’를 2일 게시하며 대응에 나섰다. 상담센터가 제시하는 트라우마 회복 방법은 △자신의 상태를 관찰하고 이해하기 △추측과 무분별한 정보로부터 우리 지키기 △스스로를 돌보고 휴식하기다.

현재 상담센터는 참사를 직접 경험한 학생과 더불어 간접 경험하는 학생까지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이정례 위원은 “트라우마 심리 치료는 초기 관찰이 제일 중요하다”며 이번 참사로 힘든 상황을 경험하고 있다면 학생상담실을 비롯해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곳과 연락해 심리적 지원을 받을 것을 당부했다. 또한 자극적이거나 무분별한 정보에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할 것을 권했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들을 공유해서 이번 참사를 아프게 경험하고 있을 이들에게 2차 가해나 피해를 주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트라우마 회복을 위해선 무엇보다 공동체의 치유적 협력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최지영 교수와 이정례 위원은 트라우마 증상이 호전되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치료도 필요하지만, 사회적인 지지와 공감 등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둘러싼 환경들이 보호하고 지지하는 마음이 느껴지게 된다면 트라우마로 발전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 위원은 청년세대에 “상처를 여러 사람들과 함께 극복하거나 함께 공유하고 전반적으로 해결하는 경험을 쌓으면 더 성장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최 교수도 ‘외상 후 성장’을 이야기했다. 사람은 누구나 회복능력이 있으며, 아픈 경험을 잘 정리하면 더 성장한다는 의미다. 현재 청년세대는 ‘재난세대’라는 말까지 나온다. 세대의 정체성은 그 세대에 있었던 좋은 일들로만 형성되지는 않는다. 이때 가장 중요한 건 서로의 감정과 생각을 나누는 ‘소통’과 ‘연대’다. 또래를 떠나보내는 대형 참사를 연이어 겪은 지금, 공동체의 지지와 공감, 연대를 통한 치유가 필요하다.

 

김종선 기자 jongseon05@inha.edu

<저작권자 © 인하프레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