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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저녁이 있는 삶

기사승인 2022.11.27  21:5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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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원 편집국장

“19시 이후에는 늦은 시간에 연락을 자제해 주셨으면 합니다” 지난 1302호 발행 당시 선거 관련 내용에 관해 문의하자 모 중앙자치기구장으로부터 돌아온 답변이다. 때는 마감 시간인 오후 10시를 코앞에 둔 시각이었다. 물론 이르다고 하기엔 조금 억지스러운 시간대다. 하지만 늦은 밤을 고사하고 깊은 새벽에도 1분 1초의 촌각을 다투는 본지 대표로서, 그 답변을 보고 솔직히 어안이 벙벙했다.

문득 지난 9월, 국회에서 박찬대 의원을 인터뷰했을 때가 생각났다. 손학규 씨의 저서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책을 보고 정치에 입문했다던 그였다. 인터뷰 이후 저녁 식사 자리가 끝난 ‘19시 이후의 늦은 시간’에도 시민의 저녁을 위해 국회 사무실로 다시 발길을 돌리던 모습이 인상 깊었다. 누군가의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 본인의 저녁을 포기하는 정치인이라… 박찬대 의원의 정치적 이념에 완전히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대표는 저런 사람이 해야 되는구나 싶었다. 누구와는 다르게 말이다.

그러고 보면 저녁을 포기하는 삶. 그것은 생각보단 녹록지 않다. 특히 학보사 국장이 돼보니 더더욱 그렇다. 단 한 번의 발행을 위해 30번의 저녁을 쏟아붓지만, 신문 잘 봤다 한마디, 우리 신문 보도 덕에 바뀐 것이 있다 한마디 듣기가 그렇게 힘들다. 간혹 기사 하나에 투자하는 열정과 고생이 밑 빠진 독에 쏟아져 내리는 물과 뭐가 다를까 하는 생각에 무력해지기도 한다. 차라리 온전한 저녁이라도 지켰으면,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이 자리의 의미가 이토록 허황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이 백 일이 되든 천 일이 되든 대표는 항상 저녁을 포기해야 옳다. 대표의 저녁은 다른 이들의 저녁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대표는 무한히 책임지는 자리다. 남들과 똑같은 저녁을 보낸다는 건, 대표라는 중직의 무게를 간과한 채 딱 남들만큼만 책임지겠다는 뜻과 다름이 없다. 대표의 저녁은 그다음 날을 책임질 준비를 하는 시간이어야 한다. 오늘의 선택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앞으로 최선의 선택은 무엇일지 고민하는 시간이 돼야 한다. 물론 그렇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저녁 한 끼 편하게 먹을 수도, 단 몇 시간의 취미 생활도 마음대로 즐길 수도 없을 테지만, 대표의 저녁이 가지는 중대성을 생각하면 그 일상에 순응하게 된다.

어느덧 대표자 선거가 마무리된 이 시점. 이번에 당선된 대표들 역시 안락한 저녁이 있는 날은 단 하루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남들과는 다른 ‘저녁이 없는 삶’, 분명 고되다. 그럼에도 저녁을 포기하고 돌아오는 보상은 너무나도 작다. 이들보다 반년 먼저 대표에 오른 사람으로서 장담하는데, 후회와 체념 그사이 어중간한 고뇌 속에서 대표로 간택 받은 순간만을 계속 떠올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고뇌 속에서도 대표라는 중직의 무게를 명심하며 저녁을 기꺼이 포기하는 선택을 해줬으면 한다. 적어도 19시 이후가 늦은 시간이 되는 경우는 없길 바란다.

이재원 편집국장 ljw3482@inha.edu

<저작권자 © 인하프레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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