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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손 씻으며 차별도 함께 씻어 내리는 곳, ‘모두의 화장실’

기사승인 2022.10.02  23:4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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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평균 4~10번. 1년에 약 3,700회. 사람들은 몇 번이고 화장실을 이용한다. 필요할 때 언제든 편하게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는, 흔히 ‘오줌권’이라 불리는 이 권리는 인간의 핵심적인 권리 중 하나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당연히 누리는 이 ‘오줌권’을 모든 시대 모든 사람들이 누렸던 건 아니다.

18세기 미국, 유색인종들은 공중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하고 ‘흑인 전용 화장실’을 찾아 길거리 곳곳을 누벼야 했다. 또한 1948년 대한민국, 중구에 있던 옛 국회건물에는 여자 화장실이 없었다. 정치의 주류는 남자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장애인 화장실 역시 마찬가지다. 공공기관에 장애인 화장실이 필수적으로 설치돼야 한다는 법안이 생긴 건 30년도 채 되지 않았다.

이처럼 화장실을 보면 사회가 누구를 포용하고 누구를 배제했는지 엿볼 수 있다. 화장실이 사회를 비추는 거울과도 같은 셈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화장실

지금도 화장실은 사회의 다양성을 비추는 거울이 되기 위해 꾸준히 변화하는 중이다. 미취학 아동의 원활한 화장실 이용을 위해 성별에 관계없이 보호자와 동반 입장이 가능한 ‘가족사랑화장실’이 그 예다. 그리고 최근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는 화장실이 있다. 바로 ‘모두의 화장실’이다.

‘모두의 화장실’이란 성별, 나이, 장애, 성정체성과 관계없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을 의미한다. 트랜스젠더, 휠체어 장애인, 성별이 다른 활동지원사와 동행하는 장애인, 월경컵을 쓰는 여성, 보호자가 필요한 어린이와 어르신까지. 평소 공중화장실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대학가에 불어오는 ‘모두의 화장실’ 바람

2022년 3월 16일, 국내 대학 최초로 성공회대학교에 모두의 화장실이 설치됐다. 스웨덴의 경우 공공화장실의 70%가 성중립 화장실이며, 미국 대학가에서는 접근성이 좋은 건물 1층마다 성중립 화장실을 설치하는 문화가 퍼질 정도로 논의가 활발하다. 국내에도 여러 시민단체와 민간건물에 모두의 화장실이 설치돼 있다. 그러나 대학에 모두의 화장실이 설치된 것은 성공회대학교의 사례가 최초다.

이후 한국예술종합학교, 부산대학교 등 대학 내 모두의 화장실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의 경우 동아리 ‘돌곶이포럼’을 필두로 모두의 화장실 설치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부산대학교 언론사 채널PNU는 재학생을 대상으로 ‘학내 성중립시설 찬반’에 대한 설문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렇게 대학가에서 ‘모두의 화장실’ 바람이 불어오는 지금, 그 시초격인 성공회대학교 ‘모두의 화장실’을 직접 방문해봤다.

 

어떻게 설치되게 됐나?

 

‘당신은 이 사이에서 고민한 적 있습니까?’

2016년 성공회대학교 남녀 화장실 사이에 붙은 한 포스터로 인해 ‘성소수자가 편히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에 대한 논의가 처음으로 이뤄졌다. 이후 백승목 총학생회장 후보가 선거 공약으로 ‘성중립 화장실’ 설치를 내걸며 본격적으로 가시화됐다.

그러나 화장실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건 비단 성소수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결론 하에 ‘성중립’ 화장실이 아닌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모두의’ 화장실 설치로 계획이 변경됐다. 비록 학교 본부와의 마찰로 설치는 무산됐지만, 대학가에서의 첫 ‘모두의 화장실’ 설치 논의라는 의의를 남겼다.

모두의 화장실이 재조명되기 시작한 건 2020년이었다. 성공회대학교 이훈 인권위원장(이하 이 위원장)은 한 학우와 이야기를 하던 중, 그가 트랜스젠더이기에 화장실 이용에 어려움을 겪다 방광염까지 걸렸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이후 이 위원장은 해당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본격적인 ‘모두의 화장실’ 설치에 돌입한다.

학우들의 반발 여론은 상당했다. “왜 내 돈으로 ‘모두의 화장실’을 지어야 하나”는 의견부터, 성범죄 문제를 언급하며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대토론회, 기자회견을 통해 학내구성원 및 대학본부를 설득하고 꾸준한 홍보를 거듭했다. 그리고 6년의 노력 끝에 2022년 3월 16일 성공회대학교에 모두의 화장실이 준공됐다.

 

성공회대학교 ‘모두의 화장실’을 방문하다

새천년관 지하 1층 학생식당 옆, 모두의 화장실이 자리 잡고 있다. 멀리서부터 보이는 화장실 표지판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치마를 입은 사람, 바지를 입은 사람, 각각의 복장을 반씩 걸친 사람, 기저귀를 가는 사람, 휠체어를 끄는 사람까지… 다양한 픽토그램은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임을 보여준다.

무거운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하는 일반 화장실과 달리 모두의 화장실은 입구부터 달랐다. 어린이, 휠체어를 탄 장애인의 눈높이에 맞춘 듯 입구 스위치가 낮은 곳에 위치해 있다. 버튼을 누르면 ‘문이 열렸습니다’라는 안내음과 함께 화장실 문이 열린다. 내부에서 ‘닫힘’ 버튼을 누르면 외부에서 ‘열림’ 버튼을 눌러도 문이 열리지 않는다.

내부는 장정 다섯이 들어가도 충분할 정도로 널찍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불편함 없이 이동할 수 있도록 넓은 공간으로 설계됐다. 또한 아이를 동반한 이가 사용할 수 있는 기저귀 교환대, 시각 장애인용 점자블록, 곳곳에 설치된 핸드레일, 어떤 시각에서도 사용 가능하도록 제작된 각도 거울까지 섬세한 배려가 눈에 띄었다. 특히 눈에 들어온 것은 양변기 바로 옆에 위치한 작은 세면대다. 월경컵 이용자를 고려해 동선을 최소화한 곳에 간이 세면대가 설치돼 있다.

성공회대학교 '모두의 화장실' 내부

모두가 사용하는 모두의 화장실

취재를 하는 중에도 모두의 화장실을 사용하기 위해 새천년관 지하 1층을 방문한 학생들을 심심찮게 마주쳤다. 모두의 화장실을 사용한 성공회대학교 2학년 여학생 A씨는 “월경컵을 사용하는데, 일반 화장실에서는 월경컵 세척이 쉽지 않다”며 “새천년관 가까운 곳에 여자 화장실이 있지만 모두의 화장실이 편리해 지하까지 내려왔다”는 의견을 전했다. 또 성공회대학교 4학년 남학생 B씨는 “혼자 사용할 수 있다는 점 덕분에 남 눈치 보지 않고 화장실을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보편적인 화장실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 역시 마찬가지였다. 성공회대학교 우준하 학생은 휠체어 이용자로 모두의 화장실이 설치되기 전 새천년관 화장실에 비데가 없어 타 건물의 화장실을 사용해야 했다. 날씨가 궂은 날에도 눈과 비를 맞으며 휠체어를 끌고 이동했고, 그때마다 ‘학교 구성원으로서 존중받지 못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모두의 화장실 설치 이후 드디어 학교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기분이라는 소감을 전했다.

‘모두의 화장실은’ 불편함을 겪는 소수자부터 보편적인 화장실 이용에 익숙한 이들까지 더욱 편리하게 접근 가능한 공간을 목표로 한다. 이 위원장은 “어느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말 그대로 ‘모두’의 화장실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100점짜리’ 화장실로의 여정

“현재 성공회대학교의 모두의 화장실이 소수자에게 100점짜리 화장실은 아니에요. 하지만 우리가 100점짜리 화장실을 바로 만들지 않았다고 해서 실패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 위원장은 한국다양성연구소에서 공개한 ‘모두를 위한 화장실 체크리스트’에 비해 현재 성공회대에 설치된 화장실이 완벽한 화장실은 아니라 전했다. 하지만 “학우들이 ‘모두의 화장실’을 편안하게 사용한다는 것이 세월로 증명된다면 다른 층, 다른 건물, 다른 학교에 분명 100점짜리 화장실이 생길 것이라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모두의 화장실’이라는 다소 생소한 개념에 대한 논의가 처음 이뤄진 만큼, 여전히 이와 관련한 갑론을박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화장실 설치를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 격렬하게 반대하는 사람들, 혹은 무관심한 사람들까지.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세상엔 분명 다양한 형태의 삶이 있고, 지금의 사회는 그들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의 화장실이 모두의 권리를 포용해주지 못하지만, 훗날 ‘100점짜리 화장실’이 사회 곳곳으로 퍼져나간다면 화장실은 비로소 ‘우리 모두를 비추는 거울’이 될 것이다.

박소은 기자 12203224@inha.edu

<저작권자 © 인하프레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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